로보트 킹 (ROBOT KING - 탄생편)
SF라는 단어는 한국의 출판계에서는 터부시되는 말이다. 이제까지 어떤 출판사도 SF작품을 출판해서 재미를 본 곳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출판된 SF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배틀 필드 어스 (B.E:Battle Field Earth)조차...
2001-02-10
김재원
SF라는 단어는 한국의 출판계에서는 터부시되는 말이다. 이제까지 어떤 출판사도 SF작품을 출판해서 재미를 본 곳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출판된 SF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배틀 필드 어스 (B.E:Battle Field Earth)조차도 광고비를 제외하면 그다지 남는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SF소설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뒤를 잇고 있는 것을 보면 SF에는 뭔가 색다른 묘미가 있나 보다. 1960년대, 1970년대 초반 출생의 청장년들에게 있어서『로보트 킹』이라는 작품은 곧 ‘SF"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존재다. 비록 이 작품의 초기 스토리가 해밀턴의 SF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요꼬야마 미츠테루의 자이안트 로보 2호의 디자인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첫 단행본의 타이틀이 ‘로보트 킹’가 아니라 ‘로버트 킹’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시작한 킹 시리즈는 잡지연재분 3권외에도『해저마녀』,『지하로 가다』,『괴인제국』, 『별의 왕녀』,『은하수비대』,『우주의 전사대』,『소인왕국』,『시간여행』,『시간대전쟁』,『우주의 침입자』등 모두 13권의 만화와 1편의 만화영화로 제작되었다. 명실공히 한국산 SF만화 중에서는 최장기 시리즈이자 최고의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SF에 대해서는 대단히 척박한 토양을 가진 한국에서, 더구나 만화라고 해서 특별히 잘 보아줄리도 없는 환경에서 유독 『로보트 킹』이라는 작품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간단하게 말하자면 ‘탄탄함’이다.『로보트 킹』은 국적불명의 ‘서부극’, 사이토 타카오 프로덕션의 만화를 본딴 ‘갱만화’, 과장된 캐릭터의 과장된 동작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학원명랑만화’등이 판치던 당시의 만화시장에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그 연대기 위에서 움직이는 만화였다. 아니 비단 스토리에서만이 아니라 그림에서도 킹은 독보적이었다. 고유성이야말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자동차는 자동차답게,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답게, 로보트는 로보트답게 그려낸 작가가 아닐까. 시트콤 형식으로 매번 같은 캐릭터가 같은 환경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학원명랑물을 제외한다면 당시의 만화는 대개 단권, 혹은 길어도 2권분량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세계관이나 설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발생하기 힘들었다. 캐릭터가 느닷없이 사건 속으로 뛰어들고 그것을 한정된 분량동안 해결하고는 그대로 퇴장하는 단막극이었다. 그러나 로보트 킹에게는 표면에 드러난 부분을 받쳐주는 설정과 세계관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구라는 좁은 행성 위에서의 활동으로 시작하지만, 곧 무대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날아감으로써 공간적인 제약에서 벗어났다. 지구이외의 행성에는 괴물과 호전적인 우주인만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되던 웰즈 스타일의 우주관과 달리, 로보토 킹과 조종사인 유탄, 호연양, 고박사 등은 은하적인 규모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해결하고 정의를 관철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은하수비대’에 소속되어 여러 행성출신의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힘을 합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색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스토리이지만, 같은 시기의 한국만화나 심지어 로보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로까지 여겨지는 다이나믹 프로덕션의 『마징가 Z』, 『게타 로보』, 『그레이트 마징가』 등을 살펴본다면 그 비논리적인 스토리전개나 규모의 협소함을 금방 느낄 수 있다. 고유성의 『로보트 킹』이 이야기와 그림, 양쪽에서 모두 탄탄함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의 바닥에는 작가 자신이 상당한 SF프릭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만화를 모사하는데 심취하던 다른 작가들과 달리 미국의 SF소설과 헐리우드산 SF영화에도 빠져있던 작가의 소양이 『로보트 킹』에 결합되어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로보트 킹』의 가장 큰 장점은 아메리칸 취향의 스토리텔링과, 일본에서 비롯된 ‘메카패치’의 결합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