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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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만화 새겨보기 : 무인도에 가기 혹은 빈자리 찾기 (박흥룡의 무인도)

조금 기억을 더듬어 보자. 저간의 비참한 사정을 망각하게 하려는 듯 경제는 안정 속에 가파른 성장을 이루고, 국민들은 대머리의 대중문화 해금조치 덕분에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는) 70년대와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이선희의 앳된 외모가 많은 팬들을

2000-07-01 하림

1984년. 그때 한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조금 기억을 더듬어 보자. 저간의 비참한 사정을 망각하게 하려는 듯 경제는 안정 속에 가파른 성장을 이루고, 국민들은 대머리의 대중문화 해금조치 덕분에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는) 70년대와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이선희의 앳된 외모가 많은 팬들을 설레게 하고, 브레이킹 좀 하는 것이 최고의 인기비결이던 때. 여름엔 LA올림픽에 경탄하고, 가을엔 최동원의 괴물 같은 피칭이, 겨울엔 허재의 신들린 듯한 드리블이 팬들을 열광시켰다.

만화판에선 83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했던 공포의 외인구단 (주1)이 연초 완결되면서 본격적인 성인극화만화의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주일아침이면 긴 머리 휘날리는 천년여왕 (주2)에게 매료되었고, 보물섬에선 둘리와 독고탁이 상한가를 쳤다. 시사만화의 풍자적 칼날은 두부나 썰을까 싶을 정도로 둔탁해지고. 평론공간에서는 만화에 대한 담론의 주도권이 민중미술계열의 이론가들에게 넘어가던 즈음. 하여튼 (여러가지 의미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일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런 저런 신인공모에 작품을 내던 신인작가 박흥용 (주3)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와중에 단편 무인도를 완성했다. 그는 이 작품을 무엇을 위해 그렸던 것일까? 아니... 대체 이런 걸 그리는 동안 무엇으로 먹고 살 작정이었을까. 츠루타 켄지(鶴田謙二) (주4)의 Spirits of Wonder 정도가 이에 비교될 수 있을까. 그나마 이 작품은 연재는 되었지 않은가? 아무도 이런 작품을 그려달라 하지 않았고, 잡지나 단행본으로 나올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기가 막힐 일이다. 아무런 맥락이 없다니). 만화광장이 창간된 것은 1985년 12월. 이전의 한국만화사상 유례가 없는 표현주의적인 묘사, 과감한 화면구성과 연출상의 시도로 가득한 이 작품을 실어줄 만한 지면은 그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한 후 발표하지 않고 4년 간 묻어 두었다. 4년이 지나고, 1988년에 와서야 얄팍한 단행본으로 선보인, 그리고는 언제 나왔냐는 듯 금새 잊혀졌던 단편 무인도는 이 땅의 만화판에서 창작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작품을 이상하게 여기는 걸까? 그거 ... 기가 막힌 거 맞나?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 완성된 그림은 남에게 보여지고, 운이 좋으면 안목이 있는 화상에게 팔리겠지(재수가 없으려면 그가 죽은 후에 경매장에서 천정을 칠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몇 달을 밤 낮 삼아 소설을 쓴다(일단 쓴다). 편집장의 눈썰미가 좋으면 실어줄지도 모른다. 여기서 (유치한 질문이긴 하지만) 왜 그런 작업을 하느냐고 물어야 할까?

예술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아. 괜찮아. 땅 파먹고 살겠다. 필요는 필요 없어. 나는 오로지 크리에이티브 일직선!"을 외칠 거라고는... 글쎄, 아무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저런 신화는 관념적으로나마 분명히 존재해왔고 이러한 인식을 통해 우리는 고귀한 창작을 주문생산과 구분해 왔다. 암묵적인 합의에 따르면 창작은 필요이전에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고, 그 장르가 고급문화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최소의 필요조건이었다.



순수한 창작. 그건, 만화가 혹은 만화장르가 속해있다고 하는 일련의 하위문화장르들이 갖지 못했던 신화. 불행한 일이다 이런 정도의 신화도 없다니... 쯧~ 아무튼 만화독자들은 당연하게도 만화가들에게 창작을 기대하지 않는다. 거기 있는 것은 어쩌면 주문생산. 미리 계약을 한다. 그려서 단행본으로 찍으면 권당 얼마씩, 운이 좋아 연재를 시작하면 쪽 당 얼마씩. 이런 판국에 우선 그리고 보자는 대책없는 만화가를 위해 마음좋게 비워둔 좌석을 찾을 수 있을까? 존재하기나 할까?

무인도는 그런 자리 찾기에 대한 간결하지만 대답하기는 꽤 곤란한 질문의 연속이다. 늦게 와서 돈이 없어서 (혹은 말 못할 거지같은 이유로) 입석표를 샀고 덕분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서서 가는 사람들. 부모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소년, 입시경쟁에서 탈락하고 애인에게 버림받은 삼수생(게다가 여학생 더구나 80년대 초반. 미칠 노릇 아닌가), 피카소의 그림과 자신의 작품을 비교하는 건방진 만화가, 자식의 집에서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고 쫓기듯 떠나온 노부부. 다리 좀 아플거다.



물론, 어엿이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많다. 대학에 합격하고 희희낙락 여행가는 젊은이들, 고생 끝에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 성적표를 받아들고 부모님의 칭찬에 기뻐하는 아이. 아아 좌석이 있으니 너무 편하다. 서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비켜줄 순 없는 노릇.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강제로 자리를 뺏을까? 자신도 앉을 권리가 있음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당연히 작가도 답하지 않는다. 어쨌든 잘못하면 역무원에게 끌려 나가기 십상이니까.

4년이나 묵혔다가 나온 것을 보면 이 맥락 없는 단편 스스로도 빈자리를 찾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 12년 후에나마 이런 같잖은 글이 쓰여지고 있는걸 보면, 결국은 자리를 찾은 것인가? (이봐. 의미부여가 지나치지 않아? ;;;)



무인도는 115쪽의 애매한 분량으로 조금 생각 밖의 결말과 함께 끝나지만(그러나, 착각하지 마시길 이건 투항이 아니니), 빈자리를 찾는 박흥용의 질문들은 리얼리즘 계열의 여타 작가들과 달리 그 집요함이나 강렬한 색깔로서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일관성있게 던져진다. 거기에 질문은 있지만 딱 부러지는 답변이나 칼칼한 주의주장은 없다. 과연 박흥용을 리얼리즘계열 혹은 의식화된 창작의 부류에 넣을 수 있을까?

진보적인 작가의식은 전복을 추구하고, 리얼리즘적 창작은 충실한 재현을 목표로 하지만 박흥용이 찾는 것은 어디까지나 길(道! Road!)이다. 왜 그의 작품엔 질주의 이미지가 지배적인가? 왜 하필이면 자동차가 아니라 오토바이인가? 어떤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런 점에서 박흥용은 다른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구도자(Seeker)적이다.

박흥용의 목표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찾은 길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렇게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을 담담히 보여줄 뿐. 작가와 등장인물과 독자는 저마나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찾으면 그만. 그것을 상대방에게 내밀고 윽박지르지는 않는다.



그의 창작여로의 거의 절반지점에는 작가/구도자로서의 내면적 좌절에서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강한 긍정에 이르는 분기점이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서 작가의 길찾기에 대한 갈망과 내적 수행은 더욱 깊어진 듯 하다. 그 결과물은 대략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 번째는 한국의 종교만화 중에 정점에 위치하는 중편 검으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처절하리만치 강렬하게 표출되고 있는 작품이며(아마도 그의 연보에서 가장 의식화의 경향이 짙은 작품이리라), 두 번째로는 장르만화판에 복귀하면서 들고 나온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그의 그림체 특히 인물묘사는 상당히 달라졌으며, 구르믈~이후로는 곡선위주의 산수화를 연상케하는 부드러운 작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유려한 펜선의 흐름과 미장센은 차라리 감동이다. T_T;;;

무인도로 다시 돌아가자. 끝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듯 상당히 복고적인 종결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물론 이 또한 지금의 기준에서 그럴 뿐이다), 그림은 그에 반비례하여 거칠 것 없이 뻗어나간다. 과감한 화면분할, 여백의 활용, 정교한 사실주의적 작화에서 인물의 윤곽선만을 남기는 극단적인 간략화를 오가는 자유로운 묘사. 이것이 정말 84년인가?

16년이 지났지만 언제 들여다봐도 경탄의 도가니. 혹은 한국만화에서 작가주의적 전통의 존재여부에 관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사심 없이 추켜세우고 싶다. 그는 작가다. 다른 무엇도 아닌 그냥 작가다.



주1)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3년 6월에 발간개시하여 1984년 3월에 전 3부 30권으로 종결되었다.

주2) 천년여왕 TV판(新竹取物語1000年女王)은 81년 4월 16일부터 82년 3월 25일까지 후지 TV 계열에서 각 30분씩 전 42화를 방영하였다. 국내에는 MBC에서 83년 봄부터 매주일 아침 1화씩 방영하였다. 교회다니던 만화독자들은 은하철도999와 천년여왕으로 이어지는 방송스케쥴과 교회가는 시간이 엇갈리면서 가슴앓이하던 기억이 나지 않을까? 그러하던 천년여왕 국내방영은 84년초 방영금지로 도중하차하였으나 공휴일 특집등으로 이어져서 그 해 가을쯤 제법 비극적인 완결편까지 공중파를 탈 수 있었다.

주3) 박흥용의 경력과 작품연보
1959년 충북 영동 출생. 1975년부터 만화수업을 시작하였다. 1981년 데뷔작 돌개바람을 내었으나 이후 10여년간 지속적인 연재 없이 각종 만화공모전 응모와, 만화광장등에 부정기적인 중, 단편 게재로 일관함.

- 1981년 돌개바람 (데뷔작)
- 1982년 튀어오르는 공 어린왕자의 노래 (이서방문고 만화공모전 특별상)
- 1984년 무인도 (1988년 고려가)
- 1986년 백지 (만화광장 신인공모전 극화부문 당선
- 1987년 학습만화 세계사
- 1988년 단행본 백지 일본에서 출판
- 1989년 학습만화 한국사
- 1992년 나는 골고다로 간다 정류장 검(국민일보 연재 - 첫 연재)
- 1993년 나무위에 사는 나무 (단편집 - 창과 창)
- 1994년 레드 존
- 1995년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1996년 한국만화대상 저작상 수상)
- 1996년 경복궁 학교 (1997년 만화탄압과 관련하여 연재중단)
- 1998년 내 파란 세이버 (1999년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


주4) 츠루타 켄지(鶴田謙二). 편집자에게는 악몽과 같은 희대의 과작 작가. 1986년 강담사(講談社) 코믹오픈으로 데뷔하였고, 모닝(モ-ニング )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실어왔으며, 1988년 첫 단행본 을 내었다. 애프터눈(アフタヌ-ン) 창간이후에는 이곳에 부정기 연재. 시리즈를 1989년 이후 약 8년간 무려 5회나 연재(?)! 그사이 다른 작품활동 없음. 1997년 총집편과 화집, 초기단편집을 묶어 세 권으로 된 츠루타 켄지 작품집을 발매하였는데, 이때 작가의 소감 한 마디. "10년 후에 나올 다음 작품집 재판에서는, 욕심이지만 한 권 정도 늘어나길 바랍니다... ;"


츠루타 켄지(鶴田謙二) 작품집. 1997년 가이낙스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