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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 - 기생이야기

작품 [기생이야기]를 볼 때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작가 김동화가 남성이면서도 순정만화를 그린 흔치 않은 케이스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80년대의 순정만화기로 시작해 [곤충소년]등의 소년만화의 시기를 거쳐 지금은 보다 성인적 화두와 어조를 가진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가지 면모가 작가 김동화로 하여금 동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인매체속에서도 섬세한 여성심리와 여성문화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묘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2001-04-01 정경미

작품 [기생이야기]를 볼 때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작가 김동화가 남성이면서도 순정만화를 그린 흔치 않은 케이스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80년대의 순정만화기로 시작해 [곤충소년]등의 소년만화의 시기를 거쳐 지금은 보다 성인적 화두와 어조를 가진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가지 면모가 작가 김동화로 하여금 동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인매체속에서도 섬세한 여성심리와 여성문화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묘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게다. 그의 최근작 [기생이야기는 그러한 맥락의 가장 끄트머리에 위치해있는데, 단지 시간상 제일 끄트머리에 있을 뿐 아니라, 당연하게도 그안에는 김동화의 그간 작품활동의 자기 반성과 변화과정이 그대로 숨쉬고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만 하다.

우선 [기생이야기]는 철저히 한국문화에 대한 의식적인 연구와 몰두를 주장하고 있다.
소재를 기생이라는 전통문화를 택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배경과 소품 하나 하나는 전통,현대를 아우르는 한국화를 굉장히 연구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을 묘사하는 방식 자체는 매우 섬세한 선화인데 이는 이전 순정만화의 시기에 보여주었던 정통 순정만화식 섬세함을 기반으로 김홍도나 신윤복식의 형체가 다시 결합된 새로운 섬세함이다. 과거 그가 창작했던 순정만화들이 소재나 인체뎃생, 장식미등에서 서양의 미적 전통에 가까웠던 것에 대한 반작용일까. 캐릭터 역시 키?고 눈 작은 한국여성의 형체를 살리는데 힘을 기울였으며 더불어 칼라일러스트의 색상들 역시 전통 색조와 채색법을 계속 연구하고 있음을 너무나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언어사용에까지 나가고 있는데, 대사들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의사소통하거나 그렇게 하여 스토리를 진행시키는데 한정되지 않고, 전통문학의 시가 문장들 이며, 민간문학의 풍부한 비유적 표현등을 최대한 담아내어 그 자체를 즐길 것을 유도하고 있다.

무엇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런 방향으로 변화시켰을까.
진솔한 탐미주의..라고 말하고싶다.
필자는 김동화의 작품을 초창기부터 읽고 즐겨왔던 세대로서 그의 탐미주의, 즉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집착을 안다.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아름다움과 멋짐에 대한 욕망을 의미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아직도 순정만화작가다. 그의 순정만화는 항상 외면적인 탐미주의와 함께, 내적으로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소녀적인 섬세한 감수성자체를 또 하나의 적극적인 미로서 파악하고, 그에 대한 탐닉과 탐구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탐구과정에서 너무나 서양적인 미형을 동경한 나머지 상실되는 현실성,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너무 떨어지는 세대적 현실감각에 부딪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의 구체성도, 감동도 잃어버린 습관적인 미의식에 빠지게 된다. 섬세한 탐미주의자는 그런 습관적 미에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그가 찾아낸 돌파구는 스스로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남성으로서 공감하고 탐닉하는 한국전통문화,전통여인상의 아름다움에 있었던 듯 하다.

[기생이야기]에서는 등장하는 상반된 성격의 두 소녀 현금이와 버들이는 기생의 길에서 서로의 인생을 교차시키고 대비시키면서 한편으로는 드라마틱한 극적 스토리 전개의 재미를,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탐구를 담지한다. 섹슈얼한 향기, 속깊고 따스한 마음씀씀이, 불운을 헤치고 삶을 세워나가는 적극적인 강함.등등의 문제를 대비시켜가는 과정에서 문득 작가가 상반된 두 소녀 모두를 아름답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음을 깨닿게 된다. 어느것이 더 낫고 못하다의 비교가 아니라, 모두에게 내재해있는 각기 다른 향기와 아름다움. 탐미주의자인 그가 지금 찾아낸 사실은 아름다움은 현실공간의 구체적인 삶 구석 구석에 스며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끄집어 내어 가꿀것인가가 [기생이야기]의 화두이자 김동화 탐미주의의 화두인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 [기생이야기]는 소품 하나에서 대사 하나까지 작가 자신이 찾아낸 갖가지 아름다움들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보여주고싶은 욕망의 집대성이다.

물론 그의 탐미주의는 여기서 멈출 수도 있고 더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남성적 시야나 과거문화의 흔적에 갇혀서 다시 생명력과 구체성을 상실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헤쳐나와 또 다른 살아있는 아름다움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더 더 아름다운 작품들을 향해 계속 해서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