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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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펴낼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의 나라 - 죠안 스파의 보른 고세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듣느니 한 번 본만 못하다...라는 격언이야말로, 본 것을 정확히 설명해내기 어려울 때, 또는 말로 그 모든 것을 다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보일 때 정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말이다. 일단 한번 읽어보자.

2005-10-01 한상정


<해외통신-프랑스>

끊임없이 퍼낼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의 나라 -

죠안 스파(Joann Sfar: 1971-)[1] 의 -『보른 고세(Le Borgne Gauchet)』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듣느니 한 번 본만 못하다...라는 격언이야말로, 본 것을 정확히 설명해내기 어려울 때, 또는 말로 그 모든 것을 다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보일 때 정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말이다. 일단 한번 읽어보자.
첫 번째 도판은 물론 분위기상 파악할 수 있는 서적의 표지이다. 무슨 유령선의 선장 같아 보이는 사람이 전혀 단정하지 못한 그림체로 묘사되어 있고, 아래 위 쪽으로 저자(죠안 스파)와 책 제목(보른 고세), 출판사 이름(아소시아시옹)이 명기되어 있다. 두 번째 도판부터 그의 세계를 엿보기로 하자.



(앞장에선 이 날개 달린 괴물이 한 병사를 죽이고 탈취한 옷을 입자마자,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뒤를 쫓아온 ‘보른 고세’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지하로 탈출한다. 보른 고세가 마침 나타난 또 다른 괴물이랑 싸우는 사이, 지하에서 나오다가 보른 고세의 말에게 물리고, 어떤 애원도 부탁도 통하지 않자, 말고기 상인에게 팔아버리겠다는 협박으로 풀려난다)



칸 1. ≪ 단번에 통했구만 ≫
칸 2. ≪ 인간의 최고의 친구들의 비겁함이야 누구나 다 아는 거지 ≫
칸 3. (이런, 걸렸다! (직역한다면, 이런 돼지같으니 !)) ≫
≪ 어이, 가스고뉴 () 병사, 치고 박을 때 이외에도 역시 바닥에 기어야 하나 ? ≫
칸 4. (흠...)
칸 5. ≪ 삼겹살을 가르고 대갈통을 부셔버리는... ≪
칸 6. ≪ 이것이 바로 가스고뉴[2]의 잠복자들이다 ! 핫하 ! ≫
≪ 내가 과시하는 이 복장의 지역을 희롱하는 당신은 대체 어디 출신이요?≫

 
(아랫부분의 옆으로 길게 네모난 곳에 쓰인 말 : 유스타페 성인에게, 돼지들을 쫓게 하라[3] -죠안 1497) 



칸 1. ≪ 나는...나는... ≫
≪ 귀스타프 도레[4] ! (
칸2. ≪ 재밌소? ≫
칸3. ≪ 뭐 계속해 보시죠 ≫
칸4. ≪ 스페인과 이탈리아, 플라망드와 아르덴느의... ≫
칸5. ≪ 그리고 나는 보르봉 산 출신인데 ≫
≪ 그럼 당신은 전혀 가스고뉴 병사가 아니란 말인가? ≫
칸6. ≪ 그게 나는...≫
칸 7. ≪ 맞고도 틀리지 ! ≫
(나는 텔레비전이 없다. 하지만 창문을 통해서 마주보고 있는 이웃의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다. 오늘저녁엔 벨몽도가 출현하는 영화를 상영했다. 죠안 1498)
만약 이 두 페이지가 책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것이라면(초반부터 주인공인 보른 고세는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다음에 볼 두 페이지는 책의 후반부에 가깝다.



칸1. ≪ 도대체 화물칸 밑바닥에서 웬 소란들이야 ≫
칸2. ≪ 대체 너희들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운도 없구나. 나는 그 유명한... ≫
≪ 네가 내 부인과 아이들을 이 차가운 감방에 가둬놓은 놈이 맞냐? ≫
칸3. ≪ 내 말 허리를 자르지 말... ≫
≪ 네 놈이 내 마누라와 애새끼들을 더러운 빵에 가둬놓은 놈이 맞냐고! ≫
칸4. ≪ 맞는데 ≫
칸5. ≪ 그럼 죽어라! ≫
칸6. ≪ 만약 내가 원한다면 말이지...≫



칸1. ≪ 머리, 머리를 잡아! ≫
칸2.
칸3. ≪ 잡았다! ≫
≪ 잘 했어! 이제 그 빌어먹을 대가리를 끝장 내버려! ≫
칸4. ≪ 내가 하게 해주라! ≫
≪ 노란 어깨! 당연하지, 오늘은 오랫동안 못 본 사람들을 만나는 날인가 보군! ≫
칸5. ≪ 이제는 드디어 내가 이 배의 유일한 주인이 되는 순간이군 ≫
칸6. ≪ 퍽! ≫
칸7. ≪ 또 한번 나를 치욕에서 구해주는구나! 오! 가스고뉴의 옛 동지여! ≫

이 시작과 끝부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건 쉽지 않으며,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이 작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점은 작가의 각 상황에 대처하는 유머감각과 시각적인 즐거움, 그리고 그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다량의 소스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실상 죠안 스파가 1996년 전후로 여러 잡지에 싣던 『보른 고세』 를 2000년에 대략 130페이지, 단권으로 재 출판한 것이다. 보른 고세는 괴물에게 죽음을 당한 뒤, 이상한 버섯사냥꾼을 만나 다시 살아나고, 그 동반자이던 인어와 함께 산다. 그 사이 잔악 무도한 노란 어깨 해적선장이 만만찮게 잔악 무도한 마법사를 만나 배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며, 잠시 외출했던 인어는 이 배에 붙잡히며, 부인을 찾아 나섰던 보른 고세는 ‘죽음’을 죽였다가 죽음이 없는 세상이 역시 쉽지 않자 ‘죽음의 선장’과 더불어 죽음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말하는 고양이와 노인을 만나 달의 집에 갔다가 다시 이 해적선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각 주인공들은 각 동반자들과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다. 대략의 줄거리에서 보듯이 이 작품은 굉장히 번잡스러운 어른들의 상상적 세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공상의 세계가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그럴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인을 찾아나선 보른 고세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당연하게도 시바의 여왕과 섹스를 하게 해 달라고 한다.
이러한 재미 이외에도 이 작품은 일단 우선적으로 눈을 만족시킨다. 이 작가의 선이 부여하는 섬세한 즐거움은 흑백버전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으며, 그 중에서 이런 독립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페이지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에피소드들은 그림체가 각기 많이 틀리다. 그가 이후에 출판하게 되는 작품들, 기성의 만화출판사들에서 출판한 칼라버전의 작품들에선 선만의 이런 맛들이 덜 살아난다. 처음의 1-2페이지의 아랫부분에 장난처럼 쓰여진 글은, 실지로 장난 이외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1400이라고 표시된 것은, 아마도 15세기를 나타내는 듯한 그의 설정에 페이지수를 차례차례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이 만화책이 1401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형식은 만화의 사전 형태들이 지니고 있던 형식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에피소드의 사이 사이에 끌적 거려 놓은 글들과 그림들도, 외국인에겐 읽고 잘 이해하기 힘들지만, 기실 꼭 읽고 지나갈 만 하다. 거기엔 그의 사물에 대한 황당한 시선이 잘 들어가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17세기의 총사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이 작가는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 약간의 변형을 거쳐 등장시킨다. 예컨대, 보른 고세는 2권의 채색된 『쬐끄만 총사(Le Minuscule Mousquetaire) 』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이미지 6 참조). 그리고 ≪ 노란 어깨 ≫는 『우주의 사르딘느(sardine de l’espace)』로, ≪ 죽음의 선장 ≫은 『페트뤼스 바르바기에르(Petrus Barbygere)』와 『작은 뱀파이어』에서도 등장했고, 등장하게 된다. 철학도를 지망했었던 그의 과거처럼, 그는 철학자에 관련된 작품들도 많이 내었으며, 최근에 발표했던 『랍비의 고양이(Le Chat du Rabbin)』에 역시 말하는 고양이가 등장해, 유대교의 사상들에 대해 토론하며 많은 이들에게 그 독창성에 갈채를 받았다. 이렇듯, 한 작품으로 그의 세계를 한번쯤 측량하고 지나갈 수 있다는 즐거움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본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만화책은 한번쯤 보고 지나가도 좋은 듯하다. 물론 여러분의 취미가 동한다면 말이다.



[주]
[1]짧긴 하지만, 부천만화정보센터의 만화가 정보에 이 작가가 들어있다. 필요하다면 참조를.
[2]알렉산드로 뒤마의 『삼총사(1844)』에 등장하는 총사 중의 한 명인 달타냥의 출신지역이다. 이후에 에드몽드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제르락(1897)』에서도, ≪ 수치심도 없는 거짓말쟁이에 결투를 밥먹듯이 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가스고뉴의, 까르봉과 가스텔-쟐루즈의 병사들이다 ≫라는 표현이 나온다.
[3]이 부분만은 해석이 정확하지 않음. 사전에 없는 단어이자…
[4] (1832-1883), 약간은 이와 유사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화가이자 일러스트, 판화가. 그의 광범한 상상력은 이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
[5]주[1]참조. 일종의 외치는 구호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 

필진이미지

한상정

만화평론가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