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같은 강아지
인터넷을 통해 동물의 애교를 먼저 접한 것은 사실,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다. 권윤주의 <스노우 캣>이 그것. 스노우 캣이 자신의 캐릭터를 발산하며 혼자 노는 즐거움을 보여주었다면, <올드독>은 때로 사소한 일상 속에서, 때로 사람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통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강아지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만큼 <올드독> 속의 올드 독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일상의 이야기들이 작품 곳곳에서 묻어난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흡연을 즐기는 이들에게 비흡연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모습으로부터 ‘상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비분강개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작가가 올드독에게 사람‘다움’을 부여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올드독’에게는 밥 달라고 짖어대는 동물의 무료한 본능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주인에게 다가가 얼굴을 부비는 10년 살이 친구처럼 의지할 무언가도 내포한다. 내 힘든 고민을 가만히 들어줄 것 같은 친구처럼 말이다. 어떤가. 이런 강아지라면 내일부터라도 함께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사람보다 나은 강아지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간을 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가 하니, 어쨌거나 인간만큼 영리한 동물이 없기 때문. 따라서 동물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주길 기다려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워낙에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짐승’ 같은 인간들이 많은 세상이라. 이에 애꿎은 개들만 속상하다. 왜인가 하니, 툭하면 “개만도 못한…”, “이런 개같은…”, “이런 개ㅅㄲ를 봤나…”등등 온갖 욕설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거나 미운 받을 만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인간보다 나은 동물’로 자주 얘기되는 것도 ‘개’이고 보니, 이 동물은 이래저래 우리 인간들과 떨어져 놓을 수 없는 한가족인가보다. 그래서일까. 강아지의 모습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을 보여줄 때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성을 불러일으킨다. ‘이거, 이거, 그래도 명색이 사람인데 좀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고 말이다. 일상으로부터 성찰과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올드독은 가벼운 위트를 넘어 이처럼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인생은 웬만한 도로보다 훨씬 혼잡한데도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없어서 자꾸만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본문 81p) 그래서 인생은 종잡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 종잡을 수 없는 어지러움이 싫다면? 올드독에게 고충을 한번 털어놓아 보자. 누가 아는가, 사람보다 나은 그가 명쾌한 결론을 내려줄지 말이다.
[기본 정보]
책 제목 : OLDDOG(올드독)
작 가 : 글그림 정우열
출 판 사: 거북이북스, 1권2006년 9월 vol. 43호
글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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