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쌍다반사
작년 여름, 나는 처참한 기분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즐겁게 해외배낭여행을 했건만, 하필이면 귀국 당일 디지털 카메라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공항 오기 직전에도 가방에 잘 들어있는 걸 확인했는데…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데, 300장이 넘는...
2006-08-15
장은선
작년 여름, 나는 처참한 기분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즐겁게 해외배낭여행을 했건만, 하필이면 귀국 당일 디지털 카메라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공항 오기 직전에도 가방에 잘 들어있는 걸 확인했는데…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데, 300장이 넘는 여행사진을 한번에 잃고 말았으니 그 속상한 심정은 말도 못했다. 그런 내 앞에 나타난 것이 기내에서 책을 대여해주는 북 카트였고, 속에서 불이 나고 있음에도 손은 습관적으로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다. 그것이 강풀의 「일쌍다반사」였다. 그 책의 위력은 대단했다. 보름간의 여행사진을 몽땅 잃어버려서 스스로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건만, 어느새 나는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불구하고 「일쌍다반사」의 갖가지 이야기들에 빠져서 눈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웃어대고 있었다. 「일쌍다반사」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실수담들을 모아 만화로 그린 책이다. 뿐만 아니라 제목에서 주는 인상처럼, 약간은 ‘상’스러운 소재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전부 다 그런 이야기들뿐이라기보다는, 보통 숨기고 싶어 할 소재들도 거부하지 않고 그려낸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욕설, 배설, 구토, 성 등등,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이 기피하고 꺼리는 이야기들을 개그로 그려내며 금기를 깨뜨린다. 마치 화장실 낙서 같은 후련함, 아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작품이다(카타르시스라고 적으면 고상해 보이지만 원래 헬라어로 ‘배설’이라는 뜻이다). 사실 나는 비위가 강하지도 않고, 이런 류의 얘기도 체질적으로 못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일쌍다반사」를 접했을 때 별 거부감 없이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이 책은 별나고 엽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저질은 아니다. 소재야 어떻든 「일쌍다반사」의 본질은 사람들의 실수담 모음집이라는 데에 있다. 사람이 고상한 실수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아니, 실수에 고상함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배설을 하는 것처럼 누구나 실수를 한다. 양쪽 다 기피대상일지는 몰라도, 음지로 몰아넣고 없는 척하고 싶어도 없앨 수는 없는 것이고 또 정말로 없어져버리면 참 곤란한 것들이다. 모두 감추고 싶은 자신의 터부이지만 그런 ‘부끄러운’ 이면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끌어내어 웃어버리는 것이다. 「일쌍다반사」의 바탕에서는 그런 ‘실수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인간이 감추고 싶어 하는 모든 금기들이 여기서는 웃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수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면서 비웃는 악의 같은 게 아니다. 저럴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절로 공감이 일어나는 것이다. 숨기고 싶은 구리구리한 실수는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당시에는 화가 나고 슬프고 당황스러웠을 순간이, 시간이 지난 지금은 실수담으로서 웃을 수 있는 과거의 추억이 되어 있다는 점은 웃음과 동시에 위안을 준다. 그때 카메라를 잃고 무지막지하게 상심해있던 나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책을 전부 읽고 나니 그렇게까지 웃고 나서 아직까지 화를 내는 것이 바보스럽게 느껴졌고, 내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이런 만화를 그려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비행기보다는 화장실에 비치해두는 것이 어울릴 듯한 책이었지만, 기회가 닿으면 한번 읽으면서 웃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은 빵만 먹고는 살 수 없는 것 아닌가. ‘카타르시스’도 처리해야지. 만화규장각 웹진 │ 2006년 8월 vol. 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