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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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만화

요즘 세상에, 천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 중에 자신의 가치관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그동안 새롭고 완성도 높은 작가주의 만화를 계속 소개해온 현실문화연구에서 벼룩만화 총서 1차분 여덟 권을 발간했다. 벼룩만화라는 독특한 이름은 이 시리즈의 매우 특별한 판형에서 비롯된다. 이 시리즈는 프랑스에서 만화 전문 출판사로 자리잡고 있으며

2002-11-01 현실문화연구

‘벼룩만화’ 단돈 천 원으로 맛보는 새로운 경험!
-현실문화연구, 벼룩만화 총서 1차분 8권 발간


1권 『이웃들』 드니 부르도
2권 『금붕어, 죽음을 택하다』 조안 스파르
3권 『산란 주의』 J.C. 므뉘
4권 『황당한 氏 이야기』 스타니슬라스
5권 『목매 죽은 꼬마의 발라드』 땅끄렐
7권 『엄마는 문제가 있다』 바루 & 다비드 B.
8권 『야만-다섯 손가락에게』 토마스 오뜨

(각 권당 1천원, 8권 1세트, 계속 발매 예정)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요즘 세상에, 천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 중에 자신의 가치관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그동안 새롭고 완성도 높은 작가주의 만화를 계속 소개해온 현실문화연구에서 벼룩만화 총서 1차분 여덟 권을 발간했다.

벼룩만화라는 독특한 이름은 이 시리즈의 매우 특별한 판형에서 비롯된다.
이 시리즈는 프랑스에서 만화 전문 출판사로 자리잡고 있으며, 뛰어난 작가들을 확보하고 있기로 유명한 Lassociation 출판사에서 처음 발간된 시리즈로, 이미 수십권의 시리즈가 출판되어 꾸준하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벼룩만화’라는 시리즈 명칭은 현실문화연구에서 책의 특징에 맞추어 고심 끝에 붙인 이름이다.

각 권당 가로 10.5 cm 세로 15 cm, 총 페이지 24 쪽. 성인 남자의 손바닥에 가볍게 올라오는 부피와 무게. 1차분 8권을 다 합해도 웬만한 책 한권보다 훨씬 더 작고 가볍다.
첫눈에 매력적인 이 책의 외형은, 하지만 이 만화책이 감추고 있는 내용에 비한다면 오히려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1차분 벼룩만화 총서의 작가들은, 국내에는 일부 작가주의 만화 매니아들에게만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는 이미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들로 유명하다.
특히 이들이 보여주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상상력과 표현 방식은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만화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이젠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지만 벼룩만화 총서를 한번 접해본다면,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어른들을 위한 만화도 다분히 획일적이고 평범한 상상력에 그치고 있었음을 누구라도 깨닫게 된다.
작은 판형, 결코 길지 않은 분량. 그리고 모든 작가에게 주어진 동일한 조건. 이런 상황을 오히려 역이용하는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과 참신한 발상이 평범한 만화 독자에게는 다만 놀라울 따름이다.

벼룩만화 총서의 작품세계는 얼핏 귀여워 보이는(?) 책의 판형을 유쾌하게 배신한다. 만화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엽기적이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 권력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제1권 『이웃들』), 한없이 희생적인 모성과 인간사의 모든 노력이 허무하게 배신당하는 세태를 가슴 아프게 보여주는 작품(제3권 『산란 주의』), 현대 세계에서 생명이 얼마나 덧없이 유린당하고 있는가를 비판하는 작품(제5권 『목매 죽은 꼬마를 위한 발라드』), 대사 한마디 없이 다섯 손가락만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사형제도의 야만성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작품(제8권 『야만』)이 있다. 또, 죽음을 비롯한 주변의 재난과 재앙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 본능(제6권 『죽음』), 문명 사회에서 과중한 책임에 지친 어느 가장의 황당하고 유쾌한 일탈(제4권 『황당한氏 이야기』)을 담은 만화가 있는가 하면, 어느 금붕어의 기상천외한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제2권 『금붕어, 죽음을 선택하다』), 현대 사회의 정신병리적인 가족 구조 안에서 상처입는 어린이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제7권 『엄마는 문제가 있다』)도 있다.


작은 부피에 이처럼 무겁고 날카로운 세계가 들어있다고?
그렇다면 재미없는 만화겠군...

이쯤 되면 슬슬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벼룩만화 총서는 만화로서의 보는 재미도 십분 충족시켜준다. 만화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는 당연한 명제를 배신하지 않는 작품들인 것이다.
흔히 만화작가들은 장편보다 단편만화가 더 어렵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한정된 지면과 분량 내에서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분량 안에서의 기발한 반전을 유지해야 하는 구성상의 묘미, 무엇보다 새로움과 독창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이 모든 것은 작가들에게 도전하고 싶은 유혹이면서도 자신의 역량을 모두 드러내야 하는 시험대이다.
벼룩만화 총서를 펼치면 우리는 유쾌하고 때로는 가슴 뜨끔하며 때로는 온몸을 전율하게도 만드는 새로운 만화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


천 원으로 책 한 권을 살 수 있다는 즐거움. 천 원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상상력을 전복시킬 수 있다는 유쾌함.

출판 제작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벼룩만화 총서의 각 권
당 천원이라는 가격은 제작 원가를 감안한다면 사실 적정한 단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문화연구는 천 원이라는 값이 독자들에게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해서 끝내 그 가격을 고수하게 되었다.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재미있고 기발한 만화로, 시각문화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지각 자극제로. 그리고 의미있는 독서를 원했던 독자들에게는 인생과 문명과 사회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의 사유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로.

벼룩만화 총서는 여러 계층의 독자들에게 새롭고도 가치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현실문화연구에서는 앞으로도 벼룩만화 총서를 계속 발간할 예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의 창작 작품도 총서에 포함시켜 발간할 계획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벼룩만화총서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시면 현실문화연구(전화/533-8643, 팩스/533-8644)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