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만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들어가야겠다. (미소년이 반말을 쓰다니…….) 내가 생각하는 암울한 만화는 세상에는 빛보다 어둠이 더 많다고 뇌까리는 만화다. 빛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것이지만 그림자는 적어도 당신의 몸에 착 달라 붙어있지 않던가. 당신이 그것을 쳐다보지 않더라도 그림자는 당신의 꽁무니에 매달려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암울한 만화를 좋아했다. 행복한 인간들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봤지만 무엇보다도 암울한 만화만이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만화가 재미가 없었다. 거기에는 암울함이 없었고, 있다해도 위험한 수준에는 절대 이르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하게 된 거지만 한국의 심의제도는 암울한 만화들을 존재하게 하지 않았다. 암울한 만화라면 대체로 성과 죽음, 증오, 열등감 등을 다루게 된다. 하지만 사회가 암울했기에 정부에서는 국민에게 행복한 이야기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빛만 쳐다보고 있으면 시력이 나빠진다. 한 번 직접 해 보라. 가끔 어두움을 직시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란의 목적은 암울한 만화들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만화의 제목은 미소년의 암울한 만화읽기이다. 즉 암울하지 않은 만화도 암울하게 읽기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뭐 이 코너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첫 회로 만화심의에 관련한 책자를 뒤적거리다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고 정해버렸다.
외계에서 날아온 유사인간이 지구인간보다 월등히 우세하여 인류가 전멸한다거나 지구의 종말을 보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내용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발행 <만화심의기준> (1984), 공상만화 분류 중 2항에서 인용
열등감에 가득찬 주변부 국가로서 이런 내용은 용납할 수 없었나부다.
생명의 존엄성을 외면하거나 인간성을 상실한 행위 등을 긍정적으로 다룬 것
<서울 YWCA 불량 순정만화 심의기준> (1990)
이거야 기준이 워낙 애매모호한 거구……. 어쨌든 세계멸망의 만화들은 악당에 맞서서 지구를 지키는 지구수호의 만화들하고는 전혀 다른 방향에 서 있다. 어둠의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주인공은 빛의 편에 서 있는 것에 비해서 세계멸망의 만화들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거나, 혹은 음지에서 죽어 버린다.
1. 외계인에 의한 지구종말. <원더 쓰리>와 <외계인 마즈>
외계인이란 대체로 유사인간이며 또 전적으로 인간보다 진화되어 있다. 신에 가까울 만큼. 우주에서 지구를 내다보고 평가하는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이며 동시에 신이라고 할까. 이런 설정으로 작가는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이 세계 속의 한 인간의 관점일 뿐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전략을 세운다.
데스카 오사무의 <원더 쓰리>와 요코야마 미쓰데루의 <외계인 마즈>는 둘 다 외계인의 관점에서 지구인들을 바라보는 설정을 취하고 있다. 이 두 만화가 인간의 어두움으로 묘사하는 것은 잔혹함과 이기심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게 된 것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의 당사자이자 패전국이었던 일본의 만화이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원자폭탄이 떨구어졌던 기억. 2차 세계대전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이자 자신들을 멸망케 했던 전쟁이다.
<원더 쓰리>에서 3명의 외계인들은 우주연합의 명령으로 지구에 반양자 폭탄을 설치해야 한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인들은 서로 간에 전쟁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매우 호전적인 종족이기 때문에. 말과 토끼와 오리의 모습을 하고 지구에 도착한 이 외계의 특공대들은 뜻밖에 매우 착하고 정의로운 우리의 주인공과 만나게 된다. 주인공과 정이 들어버린 외계인들은 지구를 폭파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지구인들을 모두 멸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선하고 정의로운 본성을 믿는다는 결론으로. 이들은 폭탄설치를 포기하고 떠나간다. 마 지막으로 지구의 평화를 바라면서, 지구에 폭탄을 설치해 놨으며 전쟁을 벌이거나 하면 터트려 버리겠다고 말해주세요오……라면서 떠나간다.
<외계인 마즈>는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론은 전혀 다르게 나왔다. 지구의 원시시대에 지구를 방문했던 우주인들은 지구인들이 매우 위험한 종속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들은 지구인들이 우주에 위협을 미칠 때가 되면 협력하여 지구를 폭파시킬 사도들을 남기고 간다. 그런데 사도들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마즈가 잠들어 있는 섬에서 화산이 분출하게 되고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로 지구인들에 의해 보살핌을 받게 된다. 마즈는 지구인들이 악한 면에도 불구하고 못지 않게 선한 면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동료들과 맞서 싸운다. <마즈는 거대로봇을 타고 지구를 폐허로 만드는 동료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한다. 동료들은 죽어가면서 마즈에게 눈을 뜨라고 말한다. 지구인들을 지금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실 여기에서 수천년 동안이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기다렸으며 자신들의 죽음으로 지구를 자폭시키려는 이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결국 그들이 옳았다. 이 만화의 결론은 마즈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지구인들을 돌아보며 하는 말에 있다. 지구는 마즈에 의해 우주의 먼지로 사라진다.
2. 지구의 다른 생물들의 눈으로 본 인류. <기생수>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류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이것은 지구의 내부에서 생태계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세계의 모습이다. 인간은 참 다양한 관점에서 멸망의 대상이다.
기생수는 인간 못지 않은 이성적 힘을 갖추고 있고, 자연의 질서에 따른 동물적인 잔혹함도(물론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잔혹하다는 이야기) 갖추고 있으며, 대단한 살상능력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생물은 자신이 먹어치운 인간의 캐릭터를 그대로 본따서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며 인간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천적이다.
과학과 문명이라는 무기로 자연을 정복해 온 인류는 이제 자연의 질서에 그대로 노출되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자연의 역습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만화의 종반부에서 결국 인류는 기생수와 인간의 식별법을 발견해서 기생수 사냥에 나서게 된다. 인간의 영악함은 자연의 역습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났는데도 읽는 이는 찝찝할 뿐이다. 사실 기생수가 인간의 모습을 취한다는 것, 그리고 작품 중에 인간이면서 기생수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이가 있다는 것, 그것은 이 만화가 단순히 자연의 관점에서 본 인간문명이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첫 장면의 누군가의 독백은 인간 것인지도.
3. 폭주하는 문명, 역시 멸망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가…….
<아키라>는 "1980년 12월 6일 오후 2시 17분 관동지구의 신형폭탄 사용을 계기로 제 3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었다."라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38년 후 일본은 새로운 부흥의 시기를 맞이하였다고 말한다. 폐허가 되었던 도쿄는 네오도쿄가 되었다. 그러나 만화가 그려내는 이 부흥의 시기란 급격한 전후(戰後)성장의 모순이 적나하게 드러나는 시기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폭동을 일으키는 반정부단체와 국가의 대립. 종말에 대한 종교가 휭행하고 정치는 혼란에 빠져 있고 청소년들은 버려진 채로 거칠게 살아간다. 그것이 네오도꾜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전후성장을 이룩한 일본의 실제 모습을 만화로 옮겨 놓은 것이다. 만화의 무대가 되는 네오 도쿄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강대국이 되기 위해 폭주하는 일본 현대사의 은유다.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는 인간은 어떤 존재라고 규정해주는 제 3의 존재를 설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독자에게 객관적으로 설명해주는 나레이션이 나오지 않고 그 때문에 만화는 혼란스럽다. 만화의 주요소재인 아키라는 인격을 갖춘 힘이 아니다. 그건 힘, 그 자체다. 모든 존재에 내재해 있는 성장과 발전의 힘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국가의 발전, 문명의 발전, 과학의 발전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 된다.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르고 사용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힘, 결과가 어떻게 될런지 생각할 틈도 없는 무조건적인 경제성장, 국가발전, 힘의 무조건적인 확장. 그것이 폭주하는 아키라라는 힘으로 형상화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데츠오는 정부의 실험체가 되어 이 힘을 끌어내게 되지만 결국 너무도 거대한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인격이 붕괴되어 폭주한다. 그것은 일본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고 완전히 폐허로 만든다. 멸망은 인간의 세계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국가와 사회, 인간 그 자체에 존재한다.
4. 세계멸망 매니아와 멸망에 대한 탐미주의.
위에서 다룬 만화들이 진지한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다면 이제 다룰 만화들은 여기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멸망이라는 테마 자체가 가지는 쾌락과 관계가 있다. 어쨌든 현재와 같은 생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끔찍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나는 종말론이 매혹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니까.
13권으로 완결되는 <세계의 미스터리> 시리즈는 세계멸망에 대한 매니아적 취향을 보여준다. 이 만화는 한 소년만화 편집부 기자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조사반을 만들어서 잡지에 연재하는 기획을 하다가, 세계멸망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 다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만화는 1999년에 끝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1999년 종말론의 근거로 숫하게 끌어쓰는 노스트라다무스를, 만화가 연재하되는 몇 년 동안이나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이 만화를 보면 그야말로 세계가 종말할 수밖에 없는 백가지 이상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살충제에 내성이 생기는 모기가 있다, 바이러스로 유전자를 변형시킬 수 있다라는 두 가지 전제만으로 모기를 이용해서 인간 유전자를 조작하는 바이러스를 확산한다는 엄청난 결론으로 비약하고 주인공이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유전자를 심으려 한다!"라고 식은땀을 흘리며 외치는 식이다. (이 만화에서는 식은땀을 흘리는 장면이 1권에 276컷이 나온다. -_-;) 그야말로 세계멸망이라는 주제를 그대로 기획, 상품화한 식은땀이 흐르는 납량특집이라고 할 수 있다.
<바스타드>는 초반에는 다크 슈나이더라는 제멋대로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환타지물이었다. 그러나 후반에 가서는 거대한 힘을 가진 천사군단과 악마군단의 대결과 그 속에서 주인공의 종휭무진을 그리고 있으며, 인간이 무엇을 하던 간에 아무래도 다 죽어버린다.
이 만화는 세계멸망을 과시적이고, 파괴적이며, 웅장하며, 기괴한 데스메탈적인 감성 속에서 일종의 미적인 유희로 다루고 있다. 탐미주의적이다.
클램프의 도 탐미적인 방식으로 세계멸망을 다룬다. 이 만화는 지구 그 자체까지 파괴하며 문명을 이루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말살하고 지구를 지키느냐, 아니면 인간을 지키느냐의 두 가지를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이 대립하는 주제를 대표하는 두 집단으로 청룡과 지룡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주제를 만화의 목적으로 하였다면 <기생수>와 같은 만화가 되었을 테지만 이 만화에서 지구멸망이란 사실 인물들의 갈등과 싸움에 무게를 실어주는 주제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한 쪽이 한 쪽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고, 한 쪽은 다른 한 쪽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세계멸망이라는 무거운 주제로부터 벗어나 당신을 사랑했어, 나를 죽여줘, 내가 죽여주지와 같은 사도-마조히즘적인 탐미주의에 집중할 수 있다. 하기야 탐미적으로 흐르는 것이 문제가 될 리는 별로 없지만. 어쨌든 애인에게 차였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에 세상이 멸망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 사람이고 그 순간의 감정이야 누가 함부로 뭐라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5. 나가며.
자신이 죽고 싶지 않은 바에야, 종말이 옳다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종말이 매혹적인 거야 어쩔 수 없다. 그건 아직까지는 대리만족이다. 그래도 혹시 누가 알리……. 가끔 뭐 든지 다 물어뜯고 싶은 이 기분이, 종말의 충동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