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세계는 그 직업의 내면과 외면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는 것 같다. 남에게 보여 지는 부분을 직업의 외면, 남에게 보여 지지 않는 부분을 내면이라고 가정할 때 결과물에 해당하는 부분이 외면일 것이고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내면에 해당될 것이다. 식당으로 치면 음식을 서비스하는 홀과 음식을 만드는 주방으로 분류될 수 있는 직업의 내면과 외면은 그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노하우가 숨겨져 있는 공간이자 색다르고 신기한 에피소드들이 넘쳐나는 시간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방송프로그램 중에는 각 방송사마다 간판으로 내거는 코미디 프로가 하나씩 존재한다. SBS는 “웃찾사”, MBC는 “개그야”, KBS는 “개그콘서트” 이 3개의 개그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매주 수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TV화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은 그들의 결과물뿐, 그들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결코 보여 지지 않는다. 이 글의 처음에서 가정한 분류법으로 치자면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외면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럼 과연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내면은 어떠할까?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폭소개그왕”은 비록 그것이 일본의 현실이지만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내면을 재밌고 치밀하게 엿볼 수 있는 참신한 소재의 만화다.하루라도 남을 웃기지 않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심할 때는 자학까지 하는 요시타케 고등학교 3학년 케이스케는 학교의 누구나 인정하는 ‘폭소왕’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아버지로부터 가업인 메밀국수집을 이어받아야 하는 케이스케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남을 웃기는 것이고 최고의 시간은 점심시간에 친구 아키히로와 함께 진행하는 ‘팡팡 점심 대방송’ 이라는 교내방송 프로그램이다. 케이스케의 하루 일과는 오직 하나, 어떤 식으로 사람을 웃길지 대본을 짜고 그에 걸 맞는 동작과 반전을 구상하는 것이며 자신의 구상이 들어맞아 친구들이 배꼽잡고 뒤로 쓰러질 때 케이스케는 최고의 희열을 느낀다.
그 어떤 외압과 음모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만 매진하는 케이스케에게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보다 웃긴 사람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엄청난 경쟁의식을 불태워서라도 반드시 그보다 더 웃겨야만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물론이려니와 자신 스스로도 ‘요시타케 고교의 폭소왕’이라는 별명을 납득하고 어떤 때는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스케의 반에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츠지모토가 전학을 오게 된다. 평상시에는 별로 말도 없고 눈에 띠지 않으려 노력하는 타입의 남학생이지만 사실 츠지모토는 오사카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전직 개그맨이었고 현재는 모종의 사연이 있어서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도쿄로 전학을 와있는 묵직한 과거를 가진 남자였다. 그러나 용은 호랑이를 알아보는 법, 전학 첫 날부터 옆자리의 케이스케와 무언가 마음이 통한 츠지모토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짝을 맞추어 친구들을 웃기기 시작하고 결국엔 ‘팡팡 점심 대방송’에도 출연하여 케이스케와 환상의 호흡을 맞추며 단숨에 학교의 명물로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미묘한 궁합에 언젠가부터 서로를 의식하게 된 두 사람은 야구부 응원방송을 계기로 서로의 꿈과 고민을 알게 되고 둘이서 걸어갈 수 있는 진지한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 만화를 그린 작가는 “비바 블루스”, “루키스” 등으로 유명한 모리타 마사노리다. 이 작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불량학생, 폭력써클 등 별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닌데 오랜만에 가지고 온 신작 ‘폭소개그왕’은 그러한 면이 싹 사라진, 아주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드라마로 무장한 재미있는 만화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3권 권두 표지에 작가가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주간연재를 할 수 없다고 밝히며 연재를 중단한 것인데, 스토리로 치자면 이제 막 서막이 끝났을 뿐인 이 만화에 흥미진진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독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아깝다. 작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만간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아 절망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그나마 조금의 위안이 된다.
2권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개그맨(또는 코미디언, 또는 만담가)들의 일상은 ‘웃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내면이라 할 수 있는 무대의 뒤쪽 세계를 리얼하게 보여주며 고통스런 창작의 과정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탄탄한 드라마를 통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있다. 만인의 웃음을 끌어내기 위해 개그맨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 그리고 그 웃음은 어떻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를 개그맨에 입문하려는 두 명의 소년들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는 ‘폭소개그왕’의 연재가 하루빨리 재개되기를 가슴깊이 기원한다.
[기본 정보] 책제목 : 폭소개그왕 작가 : 모리타 마사노리_글/그림 출판사 : 서울문화사, 총3권(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