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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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light Lady(트왈라잇 레이디)

여기에 소개하는 “twilight lady”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지난 후, 동창회를 통해 다시 만난 30대 여성들의 이야기로 37살이라는 ‘현재’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인생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2007-02-01 안성환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전 세계 여성들의 유행코드를 만들어내었던 드라마 “sex and the city"는 뉴욕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네 명의 주인공들이 만들어가는 재밌고 파격적인 이야기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성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HBO를 통해 6시즌까지 제작,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간 미디어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30대에서 40대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심리가 매우 잘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HBO 드라마 “sex and the city
미국 HBO 드라마 “sex and the city"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사만다, 미란다, 캐릭, 샬롯


여기에 소개하는 twilight lady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지난 후, 동창회를 통해 다시 만난 30대 여성들의 이야기로 37살이라는 ‘현재’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인생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차분하게 읽어나가다 보면 만화 곳곳에서 “sex and the city"의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배경이 일본이고 가정주부들의 삶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화법과 이야기의 연출구조 자체가 “sex and the city"의 화법을 지면으로 옮겨 놓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twilight lady
시부모님과 아이들 둘, 그리고 직장동료였던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카네는 20년만의 동창회에 참석해 달라는 엽서를 받고 가슴이 설렌다. 17살의 자신 안에 그리운 모습으로 살고 있는 네 명의 친구 요코, 마리, 유리카, 아야노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학생회장 다나베 슈이치가 떠올라 무엇을 입고 나갈지, 나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소녀처럼 들뜬 모습을 감출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회의 간사로부터 자신과 제일 친했던 네 명의 친구만 참석 여부를 회신해주지 않으니 다시 한 번 연락을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아카네는 가족으로부터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직접 그녀들을 찾아 나선다.

아카네가 20년 만에 다시 만난 네 명의 친구들은 아카네의 기억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귀엽고 깜찍했던 요코는 30kg이나 살이 쪄서 다이어트에 열심인 쌍둥이의 엄마로 변해있었고 직설적이고 화려했던 마리는 허영심 가득 찬 유한마담들과 어울리며 짜증덩어리가 되어있었다. 다정하고 여성적인 성품으로 남학생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유리카는 움직이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삶에 지쳐 웃음을 잃어버린 주부로, 쿨하고 지적인 매력이 넘쳤던 아야노는 3개월 전 이혼하여 혼자 쓸쓸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아야노의 전남편이 다나베였던 것이며 20년 동안 아카네가 소중히 간직해왔던 다나베의 선물이 사실은 그 당시 다나베와 몰래 사귀고 있던 아야노의 충고로 다른 친구들에게도 모두 전해진 것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만화에는 치정에 얽힌 애정행각이나 숨 막히는 반전 같은 강렬한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비록 반짝이던 젊음은 잃었지만 37살의 삶을 담담히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하며 고단한 삶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활의 고민이 만화 자체의 드라마이자 주제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아픈 시어머니, 직장을 옮기고 필사적으로 살아가려는 남편,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에게는 무관심한 자식, 남편의 사업을 위해 싫어도 사교파티에 나가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 이혼을 하면서부터 받게 되는 주위의 부담스러운 시선, 갑작스레 찾아온 성인병에 대한 불안함, 우연히 만난 연하의 남자에게 느끼게 되는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에 대한 설렘 등, 37세라는 인생의 과도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잔잔하게 펼쳐진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만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아카네의 독백이었다. 아야노와 화해하고 돌아가는 도중,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과 전철역에서 만난 아카네는 ‘무슨 좋은 일 있었어’라며 자신에게 묻는 남편의 미소를 보며 ‘별 거 없었어요.’ 라며 싱겁게 대답하고 팔짱을 낀다. 석양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의 뒤로 아카네의 독백이 이어진다.
“내게는 나의 행복이 있다, 사랑은 아니라도 애정이 있다”

[기본 정보]
책제목 : 트왈라잇 레이디
작가 : 글/그림- 미나미 나츠미
출판사 : 대원씨아이, 총1권(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