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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 현실에 새겨진 불신이라는 이름의 지옥

<지옥>, 연상호/최규석, 네이버 웹툰

2022-01-12 김한영


<지옥> : 현실에 새겨진 불신이라는 이름의 지옥


우리는 흔히 추상적∙비유적 의미로 ‘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지옥은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공간이고, 죄지은 사람만이 추락하는 최악의 공간이다.

 

연상호가 구상하고, 최규석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지옥>은 그 제목처럼 현실세계에 새겨진 ‘지옥’의 모습을 상상해낸 작품이다.



지옥이 최악의 공간인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존재다. 연상호의 <지옥>은 어떤가. 미래가 끝나버린 공간이다. 연상호는 작품 내에서 ‘불신’이라는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죄지은 자는 법의 심판을 받던, 받지 않았던 간에 시커멓고 커다란 괴생명체에 의해 연소되어 사라진다. <지옥>에서는 이를 시연이라 부르고 시연을 받기 전, 일시(日時)를 미리 고지 받는다. 그리고 ‘새진리회’가 등장하여, 이를 방관하는 자 또한 죄인이라고 주장하며, 더욱 정의롭고 참회하며 살기를 권한다.

 

우리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친구와 하는 사소한 점심 약속부터,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거나 생명을 빼앗으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죗값을 치러야한다는 법을 정하고 행하는 것까지. 우리 사회의 톱니바퀴는 신뢰라는 나사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최근 몇 년 간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옥>은 우리 사회에서 현재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그러져 있고, 범죄자들이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풀려나지만, 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시연을 통해 심판 받는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한순간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며, ‘실제로도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벌을 내리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무지함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지옥>에서 진경훈 형사의 아들 진성호는 정진수 의장을 도와, 엄마를 살해한 살인범을 불태워 죽이고 이를 마치 지옥의 사자들이 한 것처럼 꾸며놓는다.

 

진성호 엄마의 살인범은 고지를 받지 않았고 지옥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옥>에서 시연을 받은 것과 같이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인범이 지옥에 갔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새진리회를 신뢰하고 검∙경을 불신하며 범죄자는 무조건 고지를 받고 사자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잘못한 사람은 누구일까. 진성호의 엄마를 죽이고도 고지를 받지 않은 살인범? 엄마의 복수를 한 진성호? 이를 주도한 새진리회? 시연을 하지 않은 지옥의 사자? 우리는 흔히 쉽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죄는 단면적이고, 잘못은 흑과 백으로 나뉜다고, 마치 흑백으로 표현된 웹툰 <지옥>속 모습처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잘못한 사람이 누구인지 달라진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하나의 사실은 검∙경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으로 사자에 의해 살인범이 심판을 받았다고 믿는 무지함이다.

 

우리는 알고자 하면 무엇이든 충분히 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PC, 스마트폰 등으로 검색만 하면 수천∙수만 가지의 정보가 쏟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고 있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불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모름, 또는 알고자 하지 않음에서 온다.

 

<지옥>에서는 신생아에게도 고지가 내려지고 시연이 진행되지만, 부모가 아기를 감싸 안아 대신 연소되면서 아기는 살아난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갓 태어난 아이에게 고지가 내려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로 인간들은 신과 새진리회에 대한 의문에 씨앗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추상적∙비유적 표현으로 ‘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지옥은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불신이 가득한 공간이다.

 

우리는 불신하고 확신에 차, 누군가를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는가? 이것이 <지옥>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