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기분>: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당신에게
이런 우스갯 소리가 있다. 로맨스 시장이 밥 한 그릇이라면 한 숟갈 뜨면 BL, 그 수저에 묻은 밥풀은 GL이라고. 지금이야 웹툰 시장 자체가 커져 밥 한 그릇이 이제는 세숫대야만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GL은 상대적으로 변방에 속한다. 그리고 그와중에 나는 세 다리 건너면 다 안다는 한줌 백합판에 속한 ‘GL러’다. 밥풀이란 밥풀은 다 찾아다니며 먹으려고 애썼다는 이야기다. 어느 작품이 GL이라는 소문이 돌면 우르르 몰려가 꼭 한 번 맛 보고야 마는. 따로 카테고리조차 없어 BL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작품을 봐야 하는 서러운 한 때도 지나가고, 늦었지만 이제 나름 GL 카테고리가 생기고 점차 GL에 대한 주목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때가 온 것이다. 물이 들어왔으니 노라도 한 번 저어봐야하지 않겠는가.
GL이 처음이라고요? <설레는 기분>으로 GL에 입덕해봅시다
주변의 GL러들에게 언제부터 GL에 눈떴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를 꼽는다. 명문 릴리안 여학원 고등부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여고생들의 사랑과 우정. 만화책을 본 사람조차 “그 작품이 GL이야?”라고 물을 정도로 경계가 없는 우정과 사랑. 그 이후로도 GL은 가뭄에 콩나듯 이어왔으나 남성향 여성 캐릭터들간의 성애를 다룬 작품이 위주로 나오면서 그나마의 허들도 높아지고 말았다. 물론 그 당시에도 GL러들은 ‘남성향이든 여성향이든 나오면 감사하다’라는 저자세로 탐독하곤 했지만. 하지만 우리 나라의 웹툰이 대세가 되면서 세태는 바뀌었다. 한 때 웹툰의 두 축인 네이버 웹툰과 다음 웹툰에서 정식 GL 웹툰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안 그래도 가뭄인 GL의 토양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바로 2014년 코미코에서 정식연재된 쌈바 작가님의 <설레는 기분>이다.
공들인 감정선, ‘다르지 않은’ 캠퍼스 로맨스
<설레는 기분>은 그야말로 입문용 GL에 딱이다. 백설아와 김노래는 대학 동기인 것만 빼면 도무지 비슷한 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수석입학에 쇼핑몰 모델, 입학할 때부터 소문을 몰고 다니다가 홀연 호주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백설아, 평범하게 대학 다니다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김노래.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히 복학 시기가 겹치고 자취방이 바로 옆방인 데서 시작한다. 화려해보이지만 사실은 소심한 면도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설아와 설렁해보이지만 중요할 때는 흔들림 없이 단단한 노래는 천천히 서로를 의식한다.
시작은 대부분의 캠퍼스 로맨스와 동일하다. <설레는 기분>의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다르지 않은’ 로맨스라는 것. 나는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BL이나 GL의 경우, ‘너도 게이, 나도 게이, 우리 모두 게이’의 세계관을 가지고 다소 과장된 (아즈마 히로키의 말을 빌자면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등장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절세미녀에 사랑에 집착하는 사이코패스라거나, 무슨 말만 붙이면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나약하고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라거나. 더 나아가서는 플레이만 하지 않았다뿐이지 SM적인 관계가 분명한 관계도 인기가 많다. 혹은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를 이은 일본의 여학원물 계열(예를 들면 <푸른 꽃>)도 여전히 건재한다.
하지만 <설레는 기분>은 처음에는 미소가 예쁜 것으로 서로를 알아본 미래와 설아가 친구처럼 지내다가 점차 서로를 의식하고 질투를 하고 나름의 ‘썸’을 탄다. 이렇게 오래 가는 ‘썸’은 독자들이 천천히 설아와 노래에게 이입을 하게 만들고, 설아의 시선으로 노래의 미소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피곤해서 들어오다가 우연히 집 앞에서 만난 노래와 영화를 보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그 감정선을 천천히 따라가게 만든다. 굳이 장르를 찾아 접한 게 아니더라도 어느새 그들을 응원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당시 보기 드문 정식연재 GL <설레는 기분>은 코미코에서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었다. 아마도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를 보지 않은 웹툰 세대들은 처음 본 GL로 <설레는 기분>을 꼽을지도 모른다. 만화 좀 보신다는 분, 하지만 GL은 처음이라는 분이 있다면 <설레는 기분>으로 입문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