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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 <안녕은하세요>

<안녕은하세요>, 검둥, 네이버 시리즈

2022-03-21 문아름
삶은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과정: <안녕은하세요>


나는 검둥 작가의 팬이다. 처음 레진코믹스에서 작품을 발견하고 난 후 꾸준히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장르불문 찾아가서 보고야 마는데, 그 이유는 지푸라기 하나 떨어뜨리면 넘칠 것 같은 물 한 잔의 긴장감과 물이 넘치더라도 깨지지는 않는 단단함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미코와 합병이 되었지만 2017년 저스툰에서 연재되었던 작품 <안녕은 하세요>는 지금까지 소개한 GL 명작 웹툰 중에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작품이다.




안녕하지 않은 두 사람이 여기 있어요

 

레즈비언임을 밝히고 난 후 가족에게서 외면당한 박보금과 괜찮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옥죄던 안영은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박보금을 짝사랑하던 영은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인간관계다. 가족에서부터 시작된 인간관계는 영은을 옥죄고 결국 영은은 가출해 우연히 만난 보금이 관리하는 고시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모든 문제는 복잡하다. 문제는 연쇄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폭발하기 전이 더 복잡하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엉킨 실타래처럼 천천히 옥죄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건이 일어난다’라고 쓸 수 있다면, 그건 칼로 실타래를 푸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영은과 보금은 지금 각자의 실타래를 껴안고 있다. 영은은 엄마 친구의 아들로 인해 주위에서 당연한 듯 옥죄어오는 성희롱, 언제나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자 하고 보금은 레즈비언인 것을 밝히고 나자 더 폭력적으로 변한 아빠와 제발 조용히 있어달라는 여동생에게서 상처를 받고 유일하게 자신을 인정하는 혈육인 고모와 함께 살면서 독립을 꿈꾼다. 이 작품은 각각 이 두 사람의 문제의 핵심을 잡고 교차하며 서로가 힘이 되며 사랑하고 성장하는 길을 보여준다.

 

“언니 아직도 레즈야?”와 “남자들은 왜 그러나 몰라”

 

보금이 오랜만에 물건을 가지러 간 집에서 동생에게 들은 질문이다. 이 질문은 작품을 관통하는 성 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을 드러낸다. 성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의 성적 취향에 대해 할 말은 없지만’이라고 시작하는 문구를 종종 본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 소수자에 대해 ‘성적 취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차별적이다. 취향은 선호의 문제 혹은 선택 가능한 것처럼 비춰진다. 정체성은 한 존재의 본질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성별을 좋아하는가’는 뒤늦게 알아차릴 수는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보금은 자신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확인했고 이를 거부하는 가족에게서 내쳐졌다. 이기적이고 아직도 바꾸지 않은 ‘성적 취향’을 탓하며. 하지만 보금은 단단하다. 보금의 단단함은 보금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고모가 있어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보금의 단단함에 영은이 힘을 얻는다. 영은은 엄마 친구 아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당해온 성희롱을 용기내어 말하지만 엄마는 ‘나도 그런 적 있어, 남자들은 왜 그러나 몰라’라는 말로 문제를 가볍게 치부한다. 이후로도 영은은 다양한 관심을 빙자한 폭력에 노출된다.

 

“왜 우리가 이걸로 싸워야 해?”와 “널 과민하게 만든 세상 탓도 하고 살아”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 보금의 여자친구 이야기 등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지만 앞서 시작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며 이 작품은 끝이 난다. 두 대사 모두 작품 중반과 후반에 나오는 대사다. 다른 대사지만 결은 같다. 모두 당신의 탓이 아니다. 이 답변을 통해 비로소 두 사람은 안녕해진다. 때로 웹툰은 모두가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기존의 로맨스 장르적 단계를 따라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는 웹툰이 가지는 잔잔한 위로도 중요하다. GL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안녕은 하세요>는 GL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실에 대한 문제인식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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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아름

웹소설 및 웹툰 스토리 작가, 연구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레진코믹스 ‘백합only공모전’ 최우수상 「쌍년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