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의 우리> : 어떤 종말은 왜 사람을 사로잡는가?
인간의 마음이 때때로 종말에 끌린다는 것만큼 역설적인 사실은 없다. 종말이란 곧 인간, 혹은 그들이 이룩한 문명의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캉이 주장하듯이 인간 고유의 욕망이 (그들의 문명으로 대변되는) 상징계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무언가 소실되기 마련이라면, 그리고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며 그러한 소실 또한 커진다면,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과 (상징계의 타파를 통해 소실을 회복하고자 하는) 종말을 향한 동경이 같은 인간 안에 공존하는 건 또 이상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출처] 네이버웹툰/물위의 우리/뱁새&왈패
드넓은 수면 위를 한 무리의 물고기가 평화로이 노니고, 그 아래로 커다란 대관람차와 익숙한 아파트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물위의 우리>의 배경은 지구변동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국토가 잠긴 (미래의) 대한민국이다. (참고로 위 장면이 나오는 1화의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배경음악과 함께 실제 갈매기 소리가 들린다. 소소한 감상 포인트.) 바다에서는 거대한 ‘멸치’가 낚이고, ‘물방울로 이뤄진’ 게(작중 명칭 ‘물게’)가 뭍을 돌아다닌다. 장르로 따지자면 포스트-아포칼립스. 종말이 훑고 지나간 퍽 낭만적인 잔해와 차오르는 물 가운데 사람들이 택한 방법은, 남은 인구가 저 위 높은 곳(강원도)에서 거주하며 저 물 밑(잠실)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한별과 아버지 (한)호주가 잠실을 떠나 호주의 고향인 양지로 가면서 줄거리가 시작된다.
별이가 (수중 도시가 아닌) 진짜 밖을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 하나로 두 사람은 잠실을 떠나 고향 양지를 향하지만, 대개의 귀향 서사가 그러하듯이 양지 또한 결코 순수한 이상향의 공간이 아니다. 잠실로 대변되는 문명으로부터 동떨어져 자연에 가까운 모습과 그런 상황에서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정수장치이나 식물 배양시설, 화력발전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양지의 모순은, 순수한 아이와 어른의 시각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작품 안에 몇 번이고 강조된다. 예컨대 13화의 제목은 “집들이를 하자~!”인데 신기한 물건으로 가득한 한별이의 방을 구경하려고 놀러 온 아이들이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가는 장면에 이어 뒤로 호주와 모종의 거래를 한 강산(한별 또래의 아이이자 주연)이 양지에 관한 자료를 호주에게 건네주면서 13화에서 소재로 하는 집들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이는 다른 회차 또한 마찬가지이며, <물위의 우리>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이다.) 상반된 분위기의 두 축은 서로 엮인 채 때로 평행하게 때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직접적으로는 양지 사람들이 숨기는 비밀을, 넓게 보면은 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진실로 한 발짝씩 우리를 안내한다.
<물위의 우리>는 6월 4일, 무료본을 기준으로 28화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간접적인 암시만 되었던 재난 전후로 대한민국에 벌어진 일들, 강원도와 잠실이 적대하게 된 이유, 그리고 현재 잠실이 수행하는 구체적인 역할에 이르기까지 <물위의 우리> 독자들이라면 궁금했을 내용이 하나둘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줄거리가 전개되고 있다. 정말로 양지에서는 호주와 팔호가 의심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뒤에 있는 세력은 누구일까? 강원도는 어째서 잠실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체를 배신한 걸까(혹은 팔호의 설명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난이 닥쳐온 후에도 결국 인간은 이전과 같이-혹은 이전보다도 더-서로를 미워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종말 후의 세계에 끌리는 이유가 우리에게서 빠져나간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라면, 우리가 얻으려는 해답 또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짙은 파도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숨어있을 진주를 찾는 마음으로, <물위의 우리>가 앞으로 찾아낼 목적지를 기대해 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