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웹툰/귀곡의 문/삼촌
<귀곡의 문> : <귀곡의 문>을 지나 양지바른 곳으로 나아가자
그러고 보면 올 초에 귀신을 함부로 무서워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 같은 것을 했다. 이제는 납량특집도 드문 것이 되어버린 시대에, 공포 사연을 구연하는 꽤나 전통적인 형태의 예능 <심야괴담회>를 보면서였다. 침대 위로 올라와 목을 조르거나 꿈에까지 찾아오는 등 어떻게든 산 자를 괴롭히기 위해 혈안이 된 원혼들을 공포스레 지켜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원한 가득한 망령이 내가 그런 적 있듯 누군가가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재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과연 망자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원한이 짙을수록 비참한 삶과 죽음을 견디다 떠난 것이라는데, 이 자리에 들어차 마땅한 감정은 사실 공포가 아니라 슬픔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수십 화 내내 반복되는 귀신의 형상이 한결같이 여성과 아이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결심을 굳혔다. 흔히 ‘삿된’ 것으로 치부되는 존재들은 어째서 항상 여성, 노인,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곧잘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는 이승도 저승도 편한 곳이 못 된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런 식의 공포에 나까지 동조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그렇게 호기롭게 다짐을 했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겁이 많았다. 아직도 <심야괴담회>가 무섭다. 이 글을 쓰면서 공포 서사와 관련된 논문 몇 편을 들춰 봤는데 캡처된 수십 장의 공포영화 사진들을 흐린 눈으로 넘기느라 애먹었다. 지금도 검고 붉은 것 앞에서 흠칫한다.
얼마 전 완결된 <귀곡의 문>(삼촌, 네이버웹툰) 안 귀신도 형상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다. 성별이나 나이를 특정할 만하지는 않지만 ‘기형적’이라 칭할 법한 변형된 몸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공포를 유발한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 귀신들, 어쩐지 좀 하찮고 귀엽다. 침대 밑에 숨어서 겁주려다가 되려 주인공이 무서워 못 나오는 귀신(10화), 발 걸려 넘어지는 귀신(15화), 자지러지게 놀라는 귀신(17화), 노름을 너무 좋아해서 자꾸 한 판만 더를 외치는 귀신(18화) 등이 누적되니 어느 순간 그들이 무서운 존재가 아니게 된다. 급기야 창문 밖 귀신보다 미세먼지를 더 심각히 여기고, 냉장고 안에서 대뜸 손이 나와도 오히려 너저분한 냉장고 꼴에 놀라는 주인공(27화)처럼 나 역시 그들 앞에서 태연함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작화의 형과 색이 단순한 편인데 귀신만큼은 반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교한 와중에 그럴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좀 신기한 일이다.
[출처] 네이버웹툰/귀곡의 문/삼촌
<귀곡의 문>의 영능력자들은 산골짜기 점집이나 음침한 지하 골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가 병행된 회사 ‘영연(영매사 연맹)’에 한데 모여 활동한다. 한껏 정교하면서도 무섭지 않은 귀신은, 이런 식으로 작품의 골자인 퇴마 시스템부터가 다분히 현대적으로 구축된 세계이기에 가능하지 않은가 싶다. 새로운 퇴마 문화는 인간과 귀신에 대한 새로운 태도로부터 가능한 것이었을 테니까.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이나 무고한 시민의 안전 등 퇴마를 위해 으레 희생되어 온 것들이 이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시대도 있었”지만 “현재는 낡고 관성적인 절차라는 의견이 많”(31화)기 때문이다. 동물 학대가 용납되지 않고 근거 없는 터부시는 편견과 다름 아닌 세상이다. 퇴마 방식도 인간을 대하는 방식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새 시대의 상상력 앞에서 낯설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에 떠는 것은 바르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일일 것이다.
개그와 공포가 절묘히 결합된 시트콤 같던 만화가 사내 부조리를 파헤치는 쪽으로 줄거리가 흘러간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만화가 경계하는 것, 끈질기게 경계하다 기어코 퇴치까지 해내는 것은 부정적으로 낡은 모든 것들인 듯하다. 지나친 능력주의, 정신적·신체적으로 너무나 자주 위험에 노출되는 노동환경(월급은 많이 준다), 상사와 부하 직원들 간 소통의 부재, 은퇴 후 보장되지 않는 안위, 그리고 윗세대의 영적 존재들이 남들과 다르단 이유로 음지의 골방에서 홀로 고통받던 시절의 상흔까지. 앞 세대가 만들고 키우며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 오래도록 지고 온 문제들을 후세대가 불평불만하면서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그 방식이 언제나 덜 다치며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방향이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이 유쾌하고 뭉클하다.
신들조차 두려워할 만큼 강하고 아슬아슬한 최종 보스나 다름없는 인물을 보며, 제발 밝은 곳에 가서 햇볕도 쬐고, 맛있는 디저트 좀 먹으러 다녔으면 좋겠다고 염원하게 되는 일1)은 <귀곡의 문>이 열어 보인 새로운 세계 안에선 지극히 자연스럽다 못해 필연적이다. 양지에서 환히 웃는 얼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면, 어둠 속에서 부당히 움츠리고 있던 것들을 함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역시나 지켜질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귀곡의 문> 전반을 추동하는 동시에 결말의 해결책을 제시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하는 원리, ‘공포도 그것에 대한 해결책도 우리 믿음의 영향을 받는다’는 세계의 진실이 두려움과 염원의 방향을 바른 곳으로 조정해 준다. 정말 두려워할 것은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세계이며, 우리가 염원할 것은 양지 ‘바른’ 곳이다. 다시 한번 어둠을 뒤로 한 채 밝은 곳으로 향하고 싶어진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1) 187화 댓글(dlad***)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