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업> :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눈을 뜨고 나서야 그게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일장춘몽에서 깨면 공허함으로 꿈의 허망함을 느끼고는
‘여러 의미의 안도와 슬픔의 감정’이 포함된 뭉클함을 품게 되는데
[출처] 네이버웹툰/꿈의 기업/문지현
사람들은 모른다. 그 감정의 회오리가 오늘을 견뎌 낼 수 있게끔 지지해 주는 힘이라는 것을.
웹툰 <꿈의 기업>은 수면에 기인한 생체 에너지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활용성을 전제로 한 ‘꿈’같은 이야기다. ‘꿈밖의 꿈’에 대한 철학적 회유가 가득한 화두를 시종일관 문답하면서 인간 특유의 오욕(색, 성, 향, 미, 촉)과 오행(성, 인, 의, 예, 지)을 가미하여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 치밀함을 선보인다.
과학의 발달이 인공지능의 발달로 확대된 가까운 미래가 배경인 <꿈의 기업>은, 겉만 보면 보통의 사람들이 거대 기업과 인공지능에 맞서 ‘인간적’임을 증명하는 사투를 그린 SF 스릴러로 볼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의 맹점을 제대로 파고드는 시대 참여적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작중에 나오는 거대 기업 ‘드림 코퍼레이션’은 자본주의의 덩어리로 이들의 이면엔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지수의 ‘집단’이 내재하여 있다. <꿈의 기업>의 ‘집단’과 현실 속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군림의 ‘방식’만 다를 뿐, 지배의 속셈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는데, <꿈의 기업>에서는 인간을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수면’에서 파생되는 ‘생체 에너지’를 추출하여 착취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다면 ‘생체 에너지’란 무엇인가
하루 평균 성인이 잠자는 시간은 7시간. 80년을 산다고 치면 23년이란 시간을 우리는 수면으로 소비하게 된다. 잠의 기능은 육체적 회복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며 잊어야 할 것을 잊는’ 정신적 치유의 기능도 포함된다. 우리는 간혹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피아의 구별을 잊고 꿈과 현실의 물아의 구별도 잊은 채, 애틋하게 깊은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너무 애틋하여 꿈에서 흘린 눈물이 현실의 눈물로 이어지는 것은 꿈을 꿈으로 자각하지 못해서 발아되는 상황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가 간직한 각인된 기억의 소산들이다. 이러한 꿈들은 다시 현실로 이어져 사고가 나는 꿈을 꾸는 날엔 나가는 것이 꺼려지게 되고, 가까운 이가 죽는 꿈을 겪으면 괜스레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육체적 회복, 정신적 치유, 그리고 행동하게 만드는 영향력 등은 ‘잠’과 ‘꿈’에 의해 생성된 에너지원에 연유하는 것이다. 이 에너지원이 바로 ‘생체 에너지’다.
나의 생체에너지를 타인에게 줄 수 있다면
이 거대한 명제를 앞에 두고 꿈의 기업 ‘드림 코퍼레이션’은 인간으로부터 생체 에너지를 추출하는 기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생체 에너지를 전달하는 연금술을 끝끝내 개발한다. 그리고 그들은 고도화된 문명에서 인공지능에 밀려난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집, 관계, 희망, 꿈 등을 포기하는 것. 이미 현실은 가혹하다)를 ‘취업’이라는 명목으로 쉽게 끌어들인 후, 생체 에너지를 공급하는 삶을 제시, 생체 에너지를 양산하는 가축과도 같은 삶을 살게 하고 부유한 ‘집단’은 문명에서 밀려난 이들의 생체 에너지를 구매하여 ‘잠들지 않는’ 이상 사회를 지배하는 삶을 만끽하게 된다. 훗날 지구 종말의 시작으로 기록될 자본주의의 탐욕이 ‘잠’을 소비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꿈의 기업』의 이러한 장면들은 현실과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며 현실 속 지금 이 순간에도 인격적 제노사이드는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있는 그대로가 불편한 현실의 속도
현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현실은 오히려 사람의 위치를 축소해왔다. 축소판 위에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심화된 개인주의는 이기심을 부추겼고, 자본주의 체제는 물 흐르듯 사람들에게 돈으로 치장된 ‘신분’을 부여, 줄 세우기를 하며 배금주의로 모든 것을 이끌었다. 불로소득이 근로소득을 앞지른 현실에서 여전히 ‘취업’이 절실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모두 ‘신분’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토록 신분을 앞세워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저기 저 위에서 마치 전지전능한 양 모든 지혜를 섭렵한 척 내려다보는, 마천루(보이지 않는 손)에 속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숭배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재화가 줄어들고, 재화가 불필요해지면 마천루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날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불편하다. <꿈의 기업>의 드림 코퍼레이션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숭배가 무너지기 전에 인간들을 가만두면 안 되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과거와 미래의 시야를 가리고 현실의 앞만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게끔 설계된 사회. 이것이 ‘있는 그대로가 불편한 현실의 속도’가 가능한 이유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출처] 네이버웹툰/꿈의 기업/문지현
웹툰 <꿈의 기업>에서 ‘잠’은 극복되고 23년이란 잠들지 않는 시간적 생명 연장의 시대가 열리지만, 생체 에너지를 추출 당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육체는 죽더라도 자각몽을 통한 꿈밖의 꿈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지, 아직 <꿈의 기업>의 끝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사람은 꿈꾸는 동물이며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고. 단순히 생체 에너지만을 공급하는 삶을 거부하고, 언젠가 ‘꿈 밖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인간들의 살아 있는 꿈을 말이다. 나만의 기억의 소산들이 품은 뭉클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쉬이 넘겨줄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