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웹툰/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삼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에 관한 호, 불호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이하 <하.네.되>)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쉽게 잊기는 어려울 것 같다. ‘네이버에서 로판(로맨스판타지)을 다 하네’ 생각하며 화려한 그림체에 끌려 무심코 들어간 곳엔 로판의 외피는 입었지만 내가 알던 그 로판 같지는 않은 작품이 있었다. 공작가의 딸로 태어나 황태자비가 될 예정이었던 악녀이자 주인공인 메데이아가 한 번은 자신의 얼굴로, 한 번은 몸을 바꿔 성녀 프시케의 얼굴로 환희와 광기에 차 보여 준 1, 2화 두 번의 미소는 그 두 컷만으로 독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출처] 네이버웹툰/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삼
“너만은 다른 애들과 달라” 같은 진부하고 무례한 로판 남주인공 같은 대사를 뱉고 싶은 맘은 없지만, 이 작품이 정형화된 로판 흐름을 의도적으로 역행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특히나 많은 독자들이 내심 갈증을 느껴 왔을 지점을 정확히 해소하는 방향의 역행이었기에 유달리 선명히 각인될 수 있었다.
황제(황태자), 그리고 연적 관계로 묶인 두 여성의 싸움은 익숙하다. 사랑에 빠져 행복한 모습으로 껴안은 황제와 악녀, 빼앗긴 자리를 비참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선한 주인공이라는 삼자구도는 이미 많은 작품에서 그려진 바 있다. 그들은 회귀 후 전생에서 억울하게 빼앗겼던 황후 자리를 되찾기도 하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운명을 개척하기도 한다. 선한 심성을 가졌음에도 악녀로 오인 받는 주인공과 간교한 속내를 숨긴 채 해사한 얼굴로 황제를 속이는 진짜 악녀로, 최근에는 그 외형이 뒤집힌 형태로 유행하는 흐름을 보이기는 하지만 ‘한 남자를 둘러싼 성녀와 악녀’라는 구도는 꾸준히 반복된다.
하지만 <하.네.되>는 마치 로판의 외피를 입은 것은 단지 벗기 위해서였다는 듯 익숙한 구도에서 출발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간다. 몸이 바뀐 메데이아와 프시케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진짜 적은 황태자 이아로스였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황태자라는 공동의 적을 둔 연대 서사로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은 어떻게 사랑을 쟁취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가에 있으며, 100회가 넘도록 로맨스는 거의 배제되어 있다. ‘로맨스’ 판타지라고 하기엔 서사의 뼈대부터 어폐가 있는 셈이다.
인물을 그려 내는 방식 역시 의도적으로 정형성을 거스른다. 누구보다도 주인공 메데이아의 존재가 그렇다. 메데이아는 주인공에게, 특히나 로판 여주인공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성향만 모아 조합한 인물이다. 악하고 탐욕스럽고 강하다. 악하고 탐욕스럽다는 점에서 선한 주인공에 걸맞지 않고 강하다는 점에서 으레 그려졌던 악녀들과도 결을 달리한다. 더욱이 그 정도에 있어 타협이 없다. 위세가 추락한 공작가를 험담한 이의 혀를 잘라 죽이고, 자신이 증오하는 프시케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환희하며, 제국을 통틀어 적수가 없다. 메데이아가 지력뿐만 아니라 체술에 있어서도 제국 최강이라는 설정은 강한 여성주인공을 세우는 데 있어 이 작품이 얼마나 타협 없는 노선을 취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통제 없는 트랙에 올라타 질주하는 메데이아를 지켜보는 일은 보는 이에게 상당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태양을 중심에 두고 공전하는 행성처럼 메데이아의 강인함에 매료된 인물들을 지켜보는 것도 작지 않은 즐거움이다. 메데이아의 강인함을 열렬히 동경하고 그를 닮아 성장해 나가는 프시케는 여성주인공의 연적으로 기능을 다한 뒤 불행으로 마무리되는 ‘악녀’들과 다른 길을 보여준다. 제국 제일의 검사로 인정받지만 사실은 메데이아보다 약한 데다 맹목적으로 헌신적인 헬리오 또한 기존의 ‘남성성’을 벗어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악인인 이아로스조차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사연 없고 특출한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특유의 오만함 때문에 한 번씩 오판을 한다는 설정이 맘에 든다. 개연성 있게 약점을 심어 둔 것이 정교하다.
다만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하.네.되>의 분명한 강점들이 회차가 진행됨에 따라서 때때로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일이다. 지능도 체술도 모든 것이 압도적인 주인공 메데이아는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작중 내 호적수가 없다. 이아로스가 부단히 애쓰고 있긴 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위기를 타파하는 방식(이아로스가 예상치 못한 공격을 함 - 메데이아가 이미 알고 있었음)이 반복됨에 따라, 어떤 위기 앞에서도 안심을 전제하고 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의 관계가 뚜렷하게 고정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 메데이아와 프시케의 견고한 연대, 메데이아와 헬리오의 맹목에 가까운 주군관계, 이들의 한결같은 적 이아로스. 관계가 고정된 만큼 상황이 반복돼, 충분히 입체적이고 가변적인 인물을 그려 내고 있음에도 때때로 평면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 강점으로 삼고 극을 끌고 가는 작품이기에 이러한 아쉬움이 유독 도드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네.되>의 출발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만큼 설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는 뜻일 테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좀처럼 쓰이지 않는 재료와 구도로 보여주고 싶은 무엇이 분명하게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정형성을 깨트린 뒤 새로운 이야기의 길을 개척하는 일은 새롭기에 쉽지 않고 쉽지 않기에 완벽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아직 끝나지 않은 작품에 이 이상 말을 덧붙이기보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 싶었던 그 청사진을 볼 때까지 얌전히 따라가 봐야겠다. 사실 최근 회차에서 발생한 인물들 사이의 변수가 멈춰 서 있던 관계의 톱니바퀴를 조금씩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휴재가 마무리되고 돌아올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