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레자식> : 사람과 사람 사이
[출처] 네이버웹툰/후레자식/김칸비&황영찬
우리가 사는 세상엔 ‘때때로’ 소나기가 내린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는 인간사 덧없음을 깨우쳐 주듯, 낱낱이 인간사 ‘본질’을 파헤치려는 듯 스며들지만, 빗줄기 사이로 펼쳐진 우산 속 ‘가면’을 씻어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인지라 사람의 ‘바탕’은 좀처럼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각각의 사람들 모두가 삶이란 무대 위의 뛰어난 배우들이라서, 혹여 ‘설움’에 젖어 가면이 조금 흘러내렸다 한들 또 다른 가면이 나타날 뿐이다.
만약 가면이 없다면, 사람의 얼굴은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사람들의 본질이 한눈에 파악되어 우리는 범죄를 비롯한 많은 것들을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저 사람이 누굴 좋아하는지, 그리고 저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동심’을 잃어버린 대부분 사람에겐 이미 헤아리기 어려운 여러 가면이 장착되어 있다. 그리고 아마, 그 가면들은 ‘죽어도’ 영원히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웹툰 <후레자식>은 헤아릴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가면’을 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어느 살인마의 이야기다.
[출처] 네이버웹툰/후레자식/김칸비&황영찬
아버지와 아들
살아가는 목적이 단지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면 의외로 삶은 단순해진다. 수단과 방법은 별로 중요치 않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도구에 불과하니깐.
아들 선우 진. 그는 살인마 아버지 선우 동수의 ‘확실한’ 조력자로서, 아버지가 정한 ‘사냥감’을 ‘잘 차려진 밥상’으로 준비하는 역할을 도맡아서 진행한다. 기실 살인마 선우 동수는 어떤 영화배우처럼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는 역할밖에 없다. 아들의 이러한 ‘수고스러움’은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타인을 통제하는 아버지의 심리적 지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보면 ‘피의 대물림’도 배제하긴 어려워 보인다. 아버지와 같이 사냥감을 나누는 ‘놀이’의 대부분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넘어선, 그 이상의 ‘욕구’가 분출된 흔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쪽 눈의 선우 진에게 어둠 속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주는 여자친구 윤 견이 있다. 윤 견은 그에게 기꺼이 삶의 피난처가 되어 준다. 덕분에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심장의 진통을 잊고 육체적 결함의 불리함도 잊은 채 마냥 그녀를 좋아하게 되지만,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그의 아버지 살인마 선우 동수도 사냥감으로 견을 선택하게 되고,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선우 진은 ‘새로운 가면’을 착용하여 ‘후레자식’이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시작된 부자간의 전대미문의 항쟁이 웹툰 <후레자식>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본질의 문제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존엄성의 문제다. 살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취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내 상념과는 달리 항상 불합리를 품고 있다.
세계 굴지의 갑부들은 ‘고급’ 취미로 아프리카에서 맹수를 사냥하는 즐기곤 한다. 자본주의라는 도구를 이용한 ‘선택적 살생’이 취미로 둔갑하는 순간이기도 한데, 이처럼 살생이 경시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살생의 본질’에 더욱 다가갈 줄 알아야 한다. 깊숙이 들어가서, 하나의 행위가 의식과 무의식이 아닌 본질에서 발아되는 것이라면, ‘사람을 때리거나 찌르는’ 행위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봐야 한다. 즉 누군가를 때리겠다는 마음과 누군가를 찌르겠다는 마음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본질적 마음이 있어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후레자식>에서 선우 진이 여러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그는 충분히 ‘간접적 살인마’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간접적 살인’도 살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겪으면서 산업화라는 톱니바퀴 아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이것이 살인이 아니라면 무엇이 살인이란 말인가. 우리는 살생을 감히 취미로 여기고, 간접적 살인을 단순히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대는, 떳·떳·하·게 더럽게 떠들어대는 ‘불결한 가면’들을 부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톱니바퀴 아래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출처] 네이버웹툰/후레자식/김칸비&황영찬
다시, 사람과 사람사이
결말에 이르러 아들 선우 진은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남은 지독한 미련과도 같은 집착의 가면, 살인마 아버지 선우 동수를 ‘죽이겠다는 가면’을 용서라는 이름으로 벗어던지게 되고, 용서받은 아버지는 끝까지 ‘더러운 가면’을 버리지 못하여 공중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중용(中庸)을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지긋지긋한’ 행동양식임을 내세우는 동시에, 견의 진심에서 태동하는 ‘지극함’으로 선우 진의 가면들을 벗겨냄으로써 얼마든지 세계를 달리 살아갈 수 있다는 구원의 메시지를 내비치며 웹툰 <후레자식>은 갈무리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언젠가 ‘반드시’ 비가 내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빗속에서 살아갈 자신, ‘우산 없이도 살아갈 자신’을 스스로 구해야 할 때가 온다. 모든 것이 끝났고 모든 것이 늦었다고 생각되는 그 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겨우’일지라도 한 가닥의 길을 찾게 되고 ‘괜찮아’지는 것이니, 그러니 일단 최선을 다하여 매일매일 열심히 친절하게 살아가자. 저물기엔, 석양은 아직 너무나 예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