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통> : 폭력을 위한 체념 혹은 제의에의 중독

<통>/MEEN&백승훈/투유드림

2022-09-13 이현재

폭력을 위한 체념 혹은 제의에의 중독, <>

external_image

[출처] 투유드림//MEEN&백승훈 

<>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싸움을 잘하고 지도력 있는 주인공 이정우가 친구들과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며 최고의 조폭이 된다. 단순하고 목적이 분명한 만화인만큼, <>에게 기대할 수 있는 소구점 또한 단순하고 분명하다. 최고의 주먹을 휘두르는 주인공의 활약을 보는 것이다. 분명한 소구점만큼 <>의 단점도 확실하다. <>은 전형적인 방식으로 폭력을 미화하고 있어, 건전한 쾌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은 어떤 면으로 보든 건전과는 거리가 먼 만화다. 그렇다고 특별한 통찰이나 교훈을 안겨 주지도 않는다. 앞서 밝힌 바처럼 <>을 소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주인공이 폭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함이다. 이를 폭력 포르노로 비판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물론, 그 비판은 단순하고 손쉬운 만큼이나 얄팍한 담론만을 생산할 뿐이다.

그런데도 <>을 소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작가를 비롯하여 작품 전체의 태도 때문이다. <>의 그 누구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거의 완전하게 체념한다. 대신 문제와 육체를 통해 부닥치며 수많은 폭력을 생산해 낸다. 문제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대신 문제 자체를 소거하겠다는 태도는 <>을 비롯한 민백두 유니버스전체의 태도이기도 하다.

external_image

[출처] 투유드림//MEEN&백승훈

예시를 위해 잠시 유니버스 내에서 <>의 주인공 이정우와 대칭 관계에 있는 강혁의 경우를 살펴보자. <독고>에서 일진회의 방식으로 일진회를 분쇄한 주인공 강혁은 <블러드 레인>에서 경찰이 되어 조폭 간 전쟁을 유도한 뒤, 이들을 일망타진하려 한다. 물론, 이는 정상적인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최선의 해결책일 수도 없다. 이들은 그저 문제를 없애는 데에 집중할 뿐, 그 이후나 영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이정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백두 유니버스가 갖는 해결에 대한 체념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도출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숱한 무협 장르에서 정파와 사파의 대결이 이어지는 원인과도 같다. 수많은 무협 장르에서 정파는 이미 오래 전에 권모술수와 각자도생으로 인해 대의와 명분을 잃은 지 오래이며, 사파보다 비열한 방법으로 그 명맥을 겨우겨우 이어나간다. 결국, 문제 자체를 삭제하고 세계관을 재편하는 것 외에는 갈등이 해소될 방법이 없다.

이처럼 민백두 유니버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대담한 방법을 써야만 풀 수 있는 문제를 전제하고 있다. 민백두 유니버스의 인물들은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의 지배자가 된다는 신탁이 얽혀 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3등분 내 버린 알렉산더 대왕처럼 폭력과 액션을 통해 문제 자체를 끊어 버린다. 다만 그것이 해결을 제공하진 않는다. ‘민백두 유니버스의 인물들도 그 모든 것을 안다. 그 모든 것을 아는 인물들은 시시포스처럼 다시 폭력과 액션을 휘두른다.

문제가 생기고, 때리고, 쓰러지고, 복수하는 동안 <>을 포함한 민백두 유니버스가 공들여 묘사하는 것은 파열하는 신체에 대한 페티시즘보다는 어지럽게 얽힌 네트워크를 몸으로 받아 내고 있는 구도자적인 엄숙함에 가깝다. 애초에 네트워크 밖을 상상하지 않았던, 혹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인물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폭력을 통해 무한히 재생산되는 문제들을 겪는 것이다.

external_image

[출처] 투유드림//MEEN&백승훈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되,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수용한 운명론자들의 폭력이란 제의에 가깝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사건의 그물들이 오직 구도자들이 펼치는 폭력의 숙연함을 위해 봉사한다. <>에서 이정우는 그 제의에 중독된 인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과 풍경은, 페미니즘이든 머스큘리즘이든, PC든 파시즘이든 오늘날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것이 <>을 언급한 두 번째 이유다.

 

필진이미지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