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말 속을 걷다> : 당신도 날 떠날 건가요?
[출처] 만화경/너의 말 속을 걷다/김마토
정확한 관측이 어려운 거대한 시공간, 우주. 우주 어딘가에 있는 작은 행성 ‘기계 더미 별 정거장’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식이 다해 쓰러진 채 연기가 피어오르는 ‘말하는 로봇’은 친구에게 유언 같은 부탁을 한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요. 제 편지를 전해 주세요.”
욕쟁이, 거짓말쟁이, 급하게 말하던 사람, 시계 홍보원, 워커홀릭 등 13명의 수신자와 ‘말하는 로봇’의 만남이 김마토 작가의 만화 <너의 말 속을 걷다>의 주요 골자다.
[출처] 만화경/너의 말 속을 걷다/김마토
From. 말하는 로봇
‘말하는 로봇’이 가장 먼저 편지를 부치고 싶은 상대는 자신을 만든 조물주 ‘꿈꾸는 사람’이다. 그는 로봇 개발자로 멋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수익을 남기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정거장 건설에 참여차 ‘기계 더미 별 정거장’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망가져서 버려진 로봇을 주워 고쳤고 ‘말하는 로봇’이 탄생한다. ‘꿈꾸는 사람’은 그저 재미로 만들었을 뿐 ‘말하는 로봇’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이름도 지어 주지 않는다. 정거장이 완성되면 떠날 거라는 ‘꿈꾸는 사람’. 이별의 날이 오고 ‘말하는 로봇’은 혼자 남겨질 두려움에 말문이 막힌다. 고장난 창조물에 실망한 ‘꿈꾸는 사람’은 “넌 내 마지막 꿈이었어.”라는 말을 남기며 홀로 떠난다. 생애 첫 이별을 겪은 ‘말하는 로봇’은 붙박이처럼 정거장에 덩그러니 남아 오가는 행인들 틈에서 살게 된다. 그러다 우주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말동무가 되어 이야기하는 즐거움에 눈을 뜬다. 자신이 말하기보다 잘 들어 주던 ‘말하는 로봇’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분석하며 그들의 감정, 과거를 추론해 가려진 진실을 발견한다.
너에게 감정이 생기면
로봇은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도구다. 자아를 의식하고 감정이 생기는 건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지므로 로봇으로서 실격이다. ‘말하는 로봇’은 정거장에서 ‘감정이 있던 로봇’과 마주친다. 반가움이 앞서 말을 걸지만, 감정을 제거 당한 그는 ‘말하는 로봇’에게 충고한다. “감정을 제어할수록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감정이 없다는 건 상처도 받지 않는 것이다. ‘꿈꾸는 사람’과의 이별 이후 혼자가 된 두려움과 고독을 느꼈다. 그러나 스치는 인연들과 새로운 인연들 덕분에 ‘말하는 로봇’의 감정은 더 풍부해졌다. 특히 ‘말하는 로봇’과 늘 동행하는 떠돌이 고양이 ‘냐냐’의 존재는 더욱 특별해진다. 사람들은 고양이 냐냐의 울음소리를 해석하지 못하지만 ‘말하는 로봇’은 냐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둘은 동반자처럼 함께하며 정을 나누지만 냐냐는 한 행성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운명이다. 또다시 소중한 이와의 이별에 예고된다.
[출처] 만화경/너의 말 속을 걷다/김마토
또 보자.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따라온다. 이별을 무서워하는 ‘말하는 로봇’에게 냐냐는 말한다. “헤어진다는 게 불안하고 무섭겠지만, 떠나가는 게 무서워서 지금을 놓칠 수는 없잖아.” 냐냐는 “또 보자.”는 말은 남기고 떠난다. ‘말하는 로봇’은 혼자가 된 충격에 말을 잃고 쇠약해진다. 더는 삶의 희망이 없던 그때, 냐냐의 편지를 받는다. 헤어져도 마음이 이어질 수 있다. ‘말하는 로봇’은 용기 내 13명의 수신자에게 편지를 부친다. 마음은 편지에 담아 전달되고 자신을 두고 떠난 ‘꿈꾸는 사람’에게 닿는다. ‘꿈꾸는 사람’은 ‘말하는 로봇’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 사실을 알고 자신이 두고 온 ‘말하는 로봇’을 찾아간다. 그리고 편지를 받은 수신자들 하나둘 찾아온다. 모두 망가진 ‘말하는 로봇’의 처지를 걱정하고 아쉬워하며 그의 회생을 위해 돕는다. 그 마음이 모여 ‘말하는 로봇’은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멋있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꿈꾸는 사람’의 꿈은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저 꿈이 생겼어요.
2021년 SF어워드 웹툰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김마토 작가는 <너의 말 속을 걷다>가 “감정을 가진 기계가 사람들이 털어 놓는 말들 속에 숨겨진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습니다.”라고 소회했다. 장소를 이동하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로드무비처럼, ‘말하는 로봇’도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는다. 그리고 더는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우주 곳곳에 사는 친구들을 찾아가는 꿈이 생긴 ‘꿈꾸는 로봇’, 그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출처] 만화경/너의 말 속을 걷다/김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