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공> : 기발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출처] 리디/스미공/세명이다
『개미』,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으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누구나 한 번쯤 해 봄직한 상상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풀어낸 프랑스 소설가다. 2000년대 초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집 『나무』를 읽고 그 기발한 상상력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리디북스 만화 <스미공>을 읽으면서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떠올랐다. <스미공>에 실린 단편만화를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상상할 수 있는지 놀랍다.
[출처] 리디/스미공/세명이다
<스미공>은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의 초성으로 만든 만화이다.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만화대상 독자 인기상 후보작에 오른 바 있으며, ‘세명이다’ 작가의 17개 단편 만화가 실려 있다. ‘세명이다’라는 필명은 <스미공>이 2명의 작가와 가상의 1명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스미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발한 상상력과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가 결합한 이야기다.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핍진(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시점에서 객관적인 관측자가 진실에 가깝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이르는 말)함을 느낄 만하다.
[출처] 리디/스미공/세명이다
첫 번째 단편 ‘차경(借景)’은 제목 그대로 경치를 빌리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서울 어딘가 어두컴컴한 지하방을 구했는데 이 방은 알고 보니 부산 해운대 고급 건물의 49층 풍경과 연결되었다. 차경 시스템은 경치 빌리기 기술로 공간의 위치를 뒤바꾼다. 홀로그램처럼 가짜가 아니라 실제 공간이 바뀌는 것이다. 해운대에 사는 풍경 주인이 돈을 받고 서울에 위치한 지하방에 풍경을 빌려 주었다. 주인공은 비록 지하에 살지만 해운대 풍경에 만족하며 이 환경에 익숙해진다. 한 달 뒤 풍경 주인이 우울증이 나았다는 이유로 풍경을 도로 가지고 간다. 졸지에 주인공은 풍경을 빼앗겼다. 이제 주인공 앞에는 바닷가 대신 원래 있어야 할 콘크리트 벽만 존재한다. 처음부터 없을 때보다 소유하다가 상실한 것에 인간은 더 큰 박탈감을 느끼는 법이다. 해운대 풍경을 갈망하던 주인공은 그 풍경을 다시 빌리기 위해 해운대를 찾는다. 주인공은 풍경을 되찾고 삶의 안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회사 내 한 부서의 구성원 모두가 같은 꿈을 공유하는 이야기, 다 큰 성인에게 선물을 주러 온 산타, 상상만으로 먹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는 사람들 등 핍진한 아이디어와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가 결합한 이야기를 <스미공>에서 만날 수 있다.
<스미공>은 흑백 만화의 장점을 잘 살렸다. 색채가 없는 흑백 연출은 독자의 상상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낸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공포의 순간에 감정을 극대화한다.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섬뜩한 피, 일상이나 화자의 소망으로 표현된 파란 하늘, 억압을 나타내는 청테이프 등 포인트로 표현한 색채는 작품 몰입도를 높인다. 작가가 왜 이 부분을 색채로 표현했을지 추측하는 것도 재미있게 감상하는 방식 중 하나다.
[출처] 리디/스미공/세명이다
<스미공>이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장르로 구분되지만 그렇다고 아주 공포스럽지는 않다. 필자는 공포물을 보면 계속 생각이 나서 무서운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스릴러도 가급적 피하고 싶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극적인 순간에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스미공>은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장르로 분류되지만 읽으면서 그렇게 공포스럽거나 심장이 쫄깃하지 않았다. 스토리 자체가 무겁지 않다. 그러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플롯 조각이 맞춰지면서 전율을 느낀다.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하는 필자도 부담 없이 이 만화를 즐겼으니 공포물을 두려워하는 독자는 걱정하지 마시라.
팀 페리스가 지은 『타이탄의 도구들』에는 전 세계의 성공한 CEO. 사업가, 크리에이터, 예술가 등의 성공 비법이 담겨 있는데 그 중 상상과 아이디어에 대해서 ‘꾸준한 연습을 통해 개발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상력은 꼭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의 것만은 아니다. <스미공>을 읽으면서 세명이다 작가의 상상을 즐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도 핍진한 아이디어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