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살수> : 한국형 무협의 새로운 지평
[출처] 네이버웹툰/앵무살수/김성진
무협 장르는 근래 5년간 웹툰 시장에서 꾸준한 성과를 보여 왔다. 웹툰의 양대 플랫폼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네이버에서는 작년에 완결된 <용비불패>의 후속작 <고수>부터 최근 LICO의 <화산귀환>이 무협 장르의 흥행을 이끌고 있고, 카카오웹툰에서는 <아비무쌍>을 필두로 <관존 이강진>, <대사형 선유>가 무협 장르의 흥행을 이끌고 있다.
양대 플랫폼의 리딩 그룹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무협 장르의 흥행은 크게 두 가지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고수>의 사례와 같이 90~00년대 무협 장르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례다. 다만, <고수>의 뿌리가 ‘학산파’의 거장 중 한 명이었던 문정후에 기대어 있는 만큼 유산을 물려받는 사례는 드물다.
90~00년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례들보다 흔한 것은 <화산귀환>처럼 웹소설에 기반을 둔 경우다. <화산귀환>이 비가 작가의 『화산귀환』에 바탕을 둔 것처럼, 카카오 웹툰의 리딩 그룹 역시 노경찬 작가의 ‘무협 5부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탄탄한 원작은 현재 무협 장르의 흥행을 이끄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늘날 흥행작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매체로서 만화가, 어느 순간 일본의 영화시장처럼 재생산에만 열을 올리는 상태로 변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웹툰/앵무살수/김성진
김성진 작가의 <앵무살수>는 이러한 우려를 종식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단언하건대, <앵무살수>는 근래 5년간 등장했던 모든 무협 만화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축에 속하며, 무협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무협 장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다. 신필(新筆) 혹은 대협(大俠)이라고 불리는 홍콩의 거장 ‘김용’이다. 사실상 오늘날 무협 세계의 창조자라고 봐도 무방한 그의 ‘김용 월드’는 한국을 포함하여 수많은 무협 작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장 대표적인 흔적이 무협에서 수없이 언급되는 ‘화산파’이다.
화산은 구파일방 중에서도 뚜렷한 캐릭터성을 지닌 정파로 등장한다. 도가 문파에 속하나 속세를 지향하는 성격이 강하고, 극한의 검술을 지향하는 문파이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에 신무협을 중심으로 ‘매화’와 같은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출처] 네이버웹툰/앵무살수/김성진
<앵무살수>에서도 ‘화산파’는 주요한 세력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노소하’의 스승 ‘이종보’와 갈등을 일으켰던 문파이자, ‘이종보’를 검술의 세계로 안내한 ‘학통’이 몸담았던 문파로 등장하기도 한다. <앵무살수>에서 등장하는 ‘화산’은 지위는 마치 스승 혹은 고향과 같은 셈이다.
때문에 <앵무살수>에서 ‘화산’은 정파적인 면모가 부각 된 문파처럼 등장한다. 그만큼 유교적인 면모가 강조되고 있으며, 이는 정파라는 명분이 지닌 허영심을 형상화한다. 화산은 본래 도교에서 출발한 만큼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쪽에 가까웠으나, 정파라는 이름과 명분이 화산을 화산답게 만들지 못하는 셈이다.
<앵무살수>가 그리는 화산의 이러한 특징은 노소하와 이종보가 다루던 구파검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일조한다. 정파인 화산이 담고 있어야 하는 정신을 오히려 사파가 담고 있다는 상황을 통해 아이러니를 부각하고, 이를 통해 기존 무협 및 신무협이 해석해오던 화산의 캐릭터와는 다른 서사적 소구를 창출한다.
<앵무살수>가 보여 주는 기존 무협 관습에 대한 차이점은 전통 무협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신무협을 지향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동시에 여전히 한국의 무협 장르에서 뛰어난 캐릭터와 서사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무협에 대한 조예와 애정이 깊지 않더라도, 이미 그 자체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한국형 무협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