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 : 흑백 고백
[출처] 아마존의나비 출판사/금붕어/강도하
우리는 예술을 감상할 때 그 어떤 작은 연출조차 연출가 외에 확실한 의도를 파악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름의 의도 파악으로 무언가를 건질 수 있다면 연출가의 의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붕어』는 아이의 탄생 과정을 그린 자전적 성장 만화고, 내가 『금붕어』에서 느끼는 감정은 목표를 향한 고독의 여정이라 해도 말이다.
[출처] 아마존의나비 출판사/금붕어/강도하
만화 『금붕어』는 탄생의 과정을 묻는 아이에게 특별함을 더해 주고픈 아비의 마음이 담긴 흑백 동화다. 시종일관 몽환적 상상력의 나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금붕어』의 세계는 한 사내의 생존일기를 보는 듯하지만, 탄생 과정을 재난과 전쟁에 비유한 것일 뿐, ‘폐허’로 시작되어 ‘창조’로 끝나는 사투 끝에 탄생한 아이가 ‘너’라는 것을 강조하는, 자기 자식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사심이 가득 담긴 만화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강도하 본인으로 추정되는 『금붕어』 속 사내가 세계를 파헤치며 때로는 회피하며 오로지 생존에만 몰두하는 것도 생존 끝에 탄생이 있다는 과정의 험난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그만큼 젊은 날, 목표를 향하여 계속 가고자 했던 길이 만만치 않았음을, 그리고 너무나 고독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며 그때의 불확실성이 ‘너’가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볼 확률과 같은 정도의 어려움이었다는 것임을 고백하는 자전적 성장 만화이기도 한 것이다.
[출처] 아마존의나비 출판사/금붕어/강도하
『금붕어』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일들은 시간적 순차적 사건들의 연속성을 따르지 않고 이벤트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준비된 이야기가 아닌 아이의 호기심 같은 물음에서 시작된 아비의 즉흥 연설이기 때문이다. ‘금붕어’가 그렇다. 금붕어는 뜬금없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갑자기 나타난 금붕어는 그의 아이로 변한다. 그렇기에 ‘금붕어’는 꼭 금붕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제의 물음에선 ‘금붕어’가 아닌 ‘개구리’였던 것처럼.
재미있는 점은 아비의 진심이 담긴 부분으로 사회성을 묘사한 장면이다. 주인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도와주는 분신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이름 모를 누군가가 분신이 되어 도와줄 수도 있다는 것으로, 사회성과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피력한다. 그러면서도 신으로 추정되는 존재는 그저 방관자로서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데, 그는 확실한 선을 긋고 싶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순간이 와. 그럴 땐 가족이 위로해 주기도 하고, 친구가 위로해 주기도 하고, 시간이 위로해 주기도 할 거야. 다만, 어떤 요행도 바라지 말고 기대하지도 마. 신은 없으니깐.”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출처] 아마존의나비 출판사/금붕어/강도하
『금붕어』는 대화가 없고 설명이 없는 불친절한 만화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반대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단언컨대 『금붕어』의 매력은 무한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금붕어』를 통해 상상력을 발휘해 타성을 극복하고 멋진 세계를 만들어 보길 권장한다. 그래서 어디선가 우산이 되고 새가 되고 금붕어가 되어 정점에 서길, 그리고 그 정점에서 우리 흑백만화처럼 다시 만나기를,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