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삽질 중> : 우리는 오늘도
[출처] 네이버웹툰/지금은 삽질 중/자유
<지금은 삽질 중>을 보며 오랜만에 고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주인공 ‘하얀’이 학과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진로를 고민하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느껴졌다. 고고학과에 다니는 하얀은 성적에 맞춰 타협해 온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매력을 느껴 선택한 학과인데도 어쩐지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느낀다.
[출처] 네이버웹툰/지금은 삽질 중/자유
고고학에 대한 특출한 애정과 노력을 보이는 친구나 박물관장을 아버지로 둔 친구들과 자신을 두고 끊임없는 비교에 빠지기도 한다. 부단히 애정을 갖고 노력해도 가망이 없을지 모르는데 사실 자신은 그런 애정과 노력조차 충분하게 갖지 못했다. 성적은 썩 괜찮은 편이지만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고, 탐사를 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유물의 발굴을 위해 삽질하는 일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너무 많은 애정과 조건을 요구하는 진로를 지나치게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것은 아닌지 자책한다.
대학생 하얀과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학과와 진로를 하나로 겹쳐 본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고등학생 때, 졸업 후 대학의 어느 학과에 갈지를 고르는 일은 단지 한 공간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학과를 정하는 일이란 곧 직업을 정하는 일이었고, 직업을 정하는 일이란 여생을 정하는 일로 생각됐다. 처음 학생 아닌 무엇이 되는 일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말 많이 긴장했다. 그런데도 내 선택이 실수, 정확히는 실패가 될까 봐 더없이 움츠러들었다.
인류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기라도 한 양 온 마음으로 심각했던 그 시절을 이제 와 생각하면, 속았단 생각에 분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심각해졌던 것은 뭐든 과하게 고민하고 마는 내 성격 문제도 있겠지만, 고등학생 때의 선택이 일생을 결정한다고 여기는 당시 진로 교육의 영향도 컸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담도, 수업도, 대부분 입시 설명만 하다 끝날 거면서 왜 ‘진로(進路)’ 같은 이름을 붙였을까. 어떤 대학의 어떤 학과를 갈지 고민하는 시간에 ‘나아갈 길’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괜한 명명이 마음의 짐을 불렸다. 하얀은 충분히 신중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했지만, 충분한 신중함과 넘치는 애정을 품고 선택한 길에도 당혹과 좌절이 놓일 수 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의 개입으로 가던 길이 막히고 방향을 틀 수밖에 없는 순간도 온다. 내가 그랬다. 삶은 예측 불가하고 모든 것이 내 통제 아래 놓여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출처] 네이버웹툰/지금은 삽질 중/자유
하얀은 실용성 있는 학과로 전과하길 강요하는 애인과 헤어지고, 자신에게 장학생의 기회를 준 교수가 비리에 연루되어 있었음을 밝히고, 선사시대의 비밀을 발굴해 내는 일이 멋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땡볕에서 손에 흙을 묻히며 ‘삽질’을 해야만 하는 것임을 이해해 나간다. 그 혼란하고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헤매되 도망치지는 않고 끝내 고고학과를 선택한 자신을 긍정하는 데 이른다. 그런 하얀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나를 읽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 또한 그렇게 가려던 길이 가로막힌 일을 낭패로 여기지 않는다. 그 시간을 통해 내 실패와 좌절의 책임이 반드시 내 선택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성공한 선택만이 아니라 실패한 선택 역시 나아갈 길에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 아래 있는 것이 성공일지 실패일지 알 수 없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파고들며 애썼던 정직한 고민의 시간이 그 어떤 성공보다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장담하건대 분명히 또 다시 길을 잃기도 하겠지만, 이제 우리는 삶을 걸어가는 일이 삽질과도 같다는 사실을 조금은 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