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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선 이야기> : 잊을 수 없는, 잇고 싶은 그 길

<금강산선 이야기>/김용길/딸기책방

2022-11-28 박민지

<금강산선 이야기> : 잊을 수 없는, 잇고 싶은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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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딸기책방/금강산선 이야기/김용길

 

대리여행

평소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좌충우돌하는 여행자의 시점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 간접여행이라 하면 로드무비 콘텐츠도 빼 놓을 수 없다. 고전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에서 시작해 최근작인 마브로 작가의 <절교 여행> 등 여행자 시점으로 생생한 감정이 전달되어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 같다.

김용길 작가의 만화 <금강산선 이야기>는 금강산 여행기를 그린다. 2008년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중단되어 더욱 요원해진 그곳 금강산은 젊은 세대에게 생소한 곳이다. 더욱 어린 친구들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속담을 통해서나 접할까. 그저 아름답다는 풍문에 더 익숙한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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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딸기책방/금강산선 이야기/김용길

 

놀러 가는데 쌀 한 가마니

금강산선은 강원도 철원에서 출발해 내금강(내부의 금강산)으로 이어진 116.6km 길이 철도다. 1944년 철거되어 80여 년이 지난 현재, 기록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금강산 관광열차가 김용길 작가의 꼼꼼한 고증을 통해 작품 속에 복원된다. 일제강점기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에 쌀 한 가마니 비용을 들여 방옥이네 세 식구는 금강산선 기차에 몸을 싣는다. 전처소생의 큰딸 금옥, 새어머니 금순, 장남 방옥이가 그 주인공이다. 동행자로 아버지의 친구 부용, 끝순 부부와 이들의 아들 덕칠까지 총 여섯 명이 함께한다. 이 여행을 통해 가장 변화의 폭이 큰 사람은 큰딸 금옥인데 이야기의 화자인 방옥이 기억하는 금옥은 동생들을 잘 돌보는 엄마 같은 누나다. 속 깊고 다정한 누이 금옥인 내년 봄 시집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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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딸기책방/금강산선 이야기/김용길

 

다르면서 같은

금옥은 집을 떠나고 싶다. 소학교에서 내리 1등을 했지만 딸이라서 중학교도 못 가고 새엄마가 낳은 동생 셋을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어색한 새어머니와 무뚝뚝한 아버지, 완고한 할머니, 아직 어린 동생들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금옥이 집을 떠날 방법은 단 하나, 시집가는 것뿐이다. 한편, 새어머니 금순은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열여섯 살 나이에 상처한 남자에게 시집갔다. 금강산 여행은 어린 나이에 시집와 9년간 시집살이한 보상이다. 두 사람은 집을 떠나 여행의 동행자로서 평소에 말 못 하던 속내를 털어 놓고,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특히 도피성 결혼이라는 공통분모는 금옥과 금순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금순은 금옥에게 시집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며, 모르겠다면 가지 말라고 네 편이 되어 주겠다고 응원한다.

 

가짜 일본인

만화 <금강산선 이야기>의 또 다른 이야기 축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설움이다. 덕칠은 경성 사범대학 학생으로 열차 안에서 같은 자리에 앉은 일본인 부부와 일본어로 대화하고 이들도 인텔리인 덕칠에게 호의적이다. 그러던 중 일본인 불량배들이 식당차 종업원을 희롱하자 유도유단자인 덕칠이 통쾌하게 바닥에 메다꽂는다. 알고 보니 일본인 불량배는 기모노를 입은 조선인이었고, 일본인 부부는 저들은 가짜 일본인이고 덕칠이야말로 진짜 일본인에 가깝다며 칭찬한다. 덕칠은 이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혼란스럽고 씁쓸하다. 내년엔 징용을 끌려갈 처지라 식민시민의 설움은 더 깊어진다. 일행은 열차를 탄 지 4시간 만에 금강산선 종착역 내금강역에 도착한다. 장안사, 삼불암, 금강대, 묘길상을 지나 비로봉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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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딸기책방/금강산선 이야기/김용길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금강산(金剛山)은 고려 후기 불교예술이 보존돼 불자들에게 성지로 여겨진다. 금강산에 진입한 금옥 일행은 원시림이 우거진 길을 지나 높이 8m 바위에 새겨진 불입상, 금강 4대 사찰 중 유일하게 남은 표훈사를 돌아본다. 높이 40m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 묘길상 앞에선 절로 숙연해진다. 일행은 산 중턱에서 비를 만나 산장으로 몸을 피하지만, 그곳엔 덕칠과 열차 안에서 싸운 조선인 불량배가 산장지기로 있어 오갈 데 없는 조선인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냉대한다. 서러운 밤을 보내고 새벽녘 비로봉에 오르면, 땅 위에 모든 아픔을 보듬듯 동녘이 밝아온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저마다의 바라는 바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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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딸기책방/금강산선 이야기/김용길

 

만화 <금강산선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여행자의 사연이 골고루 나오고 정감 있는 그림체와 촘촘한 스토리텔링, 토막상식 등이 어우러져 여러 번 읽어도 재미있는 만화다. <금강산선 이야기>를 보고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언젠가 금강산선이 한반도-유라시아대륙으로 연결되고, 누구나 어디든 자유롭게 오가는 날이 머지않았기를.

 

필진이미지

박민지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