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305호에!> : 일상의 숨쉬기로 만나는 퀴어 담론
[출처] 네이버웹툰/어서오세요, 305호에!/와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여자 조카에게 아기 옷을 선물하기 위해 옷 가게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옷 가게 사장이 분홍색의 아기 옷만 권유하며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이모인 내가 워낙에 파란색을 좋아해서, 파란색 바탕에 하얀 물방울무늬가 있는 아기 옷이 금방 낙점되었지만 말이다.
사실, 여자아이는 분홍색 옷, 남자아이는 파란색 옷을 입혀야 한다는 성 고정관념은 20세기 들어서야 등장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성별에 따른 색깔이 처음부터 사회적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본질적인 특성이기보다는 외부적으로 구성되는 반복적인 행위로 구별된다’고 말했다. 웹툰 <어서 오세요. 305호에>에서 던지는 질문을 잘 들여다 보아야 할 이유다.
<어서 오세요. 305호에>는 이성애자인 신입 대학생 김정현이 동성애자인 룸메이트 김호모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제목이 ‘어서 오세요, 305호에’인 것은, 주인공 정현과 호모(이하 홈씨)가 사는 집의 호수가 305호이기 때문이다. 정현과 홈씨가 중심이 되는 남성 동성애자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이후에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들에 대한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의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성 소수자의 존재를 알게 된 이성애자들이 대응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흥미롭다. 마치 시트콤 코미디를 보듯 재미있지만, 허를 찌르듯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가 곱씹을수록 진중한 것이다.
[출처] 네이버웹툰/어서오세요, 305호에!/와난
무지에서 비롯된 사회적 편견
정현이 동성애자에게 가졌던 편견에서 벗어나는, 즉 ‘호모포비아’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으며 변화하는 모습 역시 흥미롭다. 처음에 정현은 아는 형의 소개로 홈씨의 집에 들어가지만, 홈씨가 게이인 걸 알고 놀라며 얼른 집을 나와야겠다는 생각부터 한다. 정현은 남성 동성애자들이 무조건 남성을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 이러한 편견으로 말미암아, 정현은 홈씨의 행동 하나하나를 오해하며 불안해지는데, 작가는 이러한 편견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정현이 스스로 발견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정현이 편견을 허물어 가는 과정이 조금은 과장된 유머러스함으로 그려져서 신선했다. 그동안 성 소수자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성 소수자에 대한 동정 내지는 연민으로, 성 소수자를 자연스럽게 피해자 캐릭터로 만들었다면, 그래서 비극적인 작품 분위기 속에서 성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정치적 올바름에 치중한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렇다. 웹툰 <어서 오세요. 305호에>는 흥미 위주의 BL이나 백합으로서 동성애 이야기가 아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진지하게 퀴어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서로 관계를 맺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독자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밀도 있는 심리묘사는 작품의 완성도를 만족시키는 요인일 터.
[출처] 네이버웹툰/어서오세요, 305호에!/와난
특히 홈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 정현이 집을 나와, 홈씨가 밤늦게 정현을 찾아 헤맬 때, 자신을 걱정하는 홈씨를 마주한 정현의 심리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그동안 낯설고 두려운 타자로만 생각했던 성 소수자에게서 ‘사람’을 발견해 가는, 관계의 질적 전환이 아니었을까?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는 편견
웹툰 <어서 오세요. 305호에>는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퀴어 담론을, 우리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친근한 인물 캐릭터들 간의 심리적인 교감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평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거대한 고정관념 위에 터를 잡은 채 쌓아 올린 ‘집단 편견’은 아니었는지, 질문을 던진다.
편견이 위험한 이유는,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하다고’ 간주되는 사회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에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쳐 간다면, 어느새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서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높고 두터운 벽으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