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생존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출처] 카카오페이지/프로야구 생존기/최훈
우연히 지나가다 거대한 숲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렇게 아름답다. 아름다운 능선과 초록 속의 숲 향기가 독하면서도 향긋하니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숲속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숲 안에서 자그마한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을 꿈꿔 보는 것이다. 농사도 하고 사과나무도 심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 짙게 열린 감을 따 먹으며 글 쓰는 삶도 동시에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바람이 정말로 옳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처음에 먹은 이 감정을 소중히 지키기란 쉽지 않다. 막상 숲 밖이 아닌 숲 안에 살게 되면 현실과 다르니 그렇다. 숲 안에 홀로 남겨진다면 칠흑 같은 어둠을 견뎌야 하고 도시와는 다른 단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드러날 것이 뻔하니 그렇다. 누군가는 만족하겠지만, 숲 밖에서 숲이 마냥 좋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 품었던 마음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 소개할 최훈의 만화(웹툰) 〈프로야구 생존기〉(2020~현재)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야구를 정말 뜨겁게 즐긴다. TV 앞에서 간식을 먹으며 열광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뜨겁게 소비할 때도 많다. 팬데믹 시대로 인해 인기가 잠시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드라마틱한 상황이 빈번히 야구장에서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두 손을 쥐고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와 팀이 꼭 이겨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때론 바람이 어긋날 때도 있지만, 힘겹게 역전하는 날에는 마치 자신이 힘든 상황을 헤쳐나간 것처럼 기뻐한다. 야구를 즐긴다는 것은 이처럼 ‘나’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야구를 본다.
[출처] 카카오페이지/프로야구 생존기/최훈
여기서 잠시 생각해야 할 것은 본다는 행위 자체다. 야구를 본다는 것은 이처럼 연출된 경기를 본다는 것이지 야구장 안에서 선수들의 삶을 직접 살아 보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공을 던지고 받고 치면서 점수를 채우는 행위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드라마일 수도 있지만, 막상 선수가 되어 그들의 삶을 살아 보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가 야구 선수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본다면, 어렵지 않게 ‘야구 경기장’도 자신이 서 있는 이곳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화가 최훈은 이런 ‘틈’을 찾아 만화(웹툰)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 만화사(漫畫史)에서 야구를 소재로 다룬 작품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찌질하고 소심한 표정을 담은 사례는 적었던 것 같다. 즉, 프로야구 판에서 어떻게 해서든 감독 눈에 띄어 먹고살아야 하는 야구 선수들의 절박한 생존 이야기를 라이브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프로야구 생존기〉는 흥미롭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웹툰을 읽으며 위로와 위안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처] 카카오페이지/프로야구 생존기/최훈
이 웹툰은 성장 요소를 품고 있다. 만화가 최훈은 발이 빠른 주인공(노영웅)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담는다. 노영웅은 성실하고 순수한 인물로 동료 선수들에게 자주 이용당하거나 무시당한다. 하지만 꿋꿋하게 프로야구계에서 버틴다. 그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을 야구 선수로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와, 자신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동생 때문이다. 노영웅은 이들을 생각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쓰러지지 않는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잡초처럼 일어선다. 독자들 또한 이런 노영웅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난다. 그래서 노영웅은 (NO)영웅이 아니라 ‘영웅’이다. 영웅이 무엇이겠는가. 마블 코믹스에서 등장하는 슈퍼맨을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영웅은 보통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당신’과 ‘나’ 아니겠는가. 그렇다. 우리 모두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 우리 모두 영웅이다. 야구는 즐거움과 흥미를 움켜잡을 수 있는 소재다. 독자들께서는 경기장이 아닌 웹툰에서 야구를 즐기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