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투유드림/여의주/운&김한석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제2항-
국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수단은 선거이다.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의원을 선출하는 지선 등이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여 대표자에게 국가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며, 자질이 부족한 대표자는 다음 선거에서 책임을 물어 교체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선거는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처] 투유드림/여의주/운&김한석
웹툰 <여의주>는 흙수저 출신 해직노동자 장유진이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장유진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고향에 내려온다. 엄마에게 취업과 결혼 스트레스를 받고 술김에 대성시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한다. 인지도 바닥인 장유진의 상대는 천만 관객 영화배우 출신의 현역의원 차필웅, 재벌 2세이자 전직 아나운서이며 미모까지 갖춘 중학교 동창 배춘금이다. 장유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지만 천재 지략가 한태환을 선거 참모로 영입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든다.
<여의주>의 서사는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영웅의 여행 12단계’ 패턴을 충실히 따른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살던 주인공(일상생활)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모험에의 소명)하지만 주변의 반대는 물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소명을 거부). 한태환을 참모로 영입하기 위해(정신적 스승을 만남) 100명의 지지자를 극적으로 모아 첫 테스트를 통과한다(첫 관문의 통과). 이런 식으로 검증된 작법 방식인 영웅의 여행 12단계를 적용하여 짜임새 있게 서사를 진행한다.
[출처] 투유드림/여의주/운&김한석
<여의주>는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큰 서사 안에서 ‘저조한 지지율에 장유진이 어려움에 직면→장유진과 한태환의 가치관 충돌→가치관의 합의(대체로 장유진이 한태환을 따르지만 한태환도 장유진의 선택을 존중한다)→한태환의 전략 성취→지지율 상승’의 구조가 반복된다. 기존 정치인들에게 홀대받았던 낙후된 만선마을 주민을 찾아가거나 선거운동원 회식 제공과 같이 선거법을 넘나들며 해 왔던 관례를 따르지 않는 등 장유진의 사람을 향한 존중과 원칙에 양보가 없는 행동은 답답할 정도로 독자에게 고구마를 잔뜩 먹인다. 그러나 독자에게 고구마를 잔뜩 먹인 후 한태환의 전략이 성취되는 연출을 통해 시원한 사이다를 경험하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는 주인공의 #해고노동자, #흙수저, #정의로움의 해시태그와 <삼국지>의 유비-제갈량, <랑야방>의 정왕-매장소의 조합같이 정치물에서 주인공에게 부여된 정당성이 합쳐진 데 따른다.
[출처] 투유드림/여의주/운&김한석
다만 서사나 캐릭터가 짜임새 있게 배치된 데 비해 작품의 엔딩 부분은 마치 화룡정점의 고사에서 용의 눈을 그리지 않고 연재를 끝낸 느낌이다. 그동안 <여의주>는 정의로운 성품의 장유진과 천재 지략가 한태환의 전략으로 지지율을 올려왔으며 최종 목표인 국회의원 당선 역시 이에 근거하여 성취될 때 서사의 개연성을 얻는다. 그런데 선거 전날 두 분의 어르신이 등장하며 선거의 최종 캐스팅 보트를 쥐며 아슬아슬하게 두 표차 승리를 한다. 한태환의 전략으로 최종적으로 팽팽한 5:5 구도를 만들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 극적으로 최종 승리를 거둔다는 스토리이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영웅의 여행 12단계의 맨 마지막 부분인 ‘영약을 가지고 귀환’(선거에서 승리, 국회의원 당선)해야 하는 엔딩 부분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두 분의 어르신이 왠지 석연치 않다.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다나카 요시키의 SF소설「은하영웅전설」은 우주를 배경으로 유능한 황제가 다스리는 전제주의와 부패한 민주주의 간 대결을 그리며 독자에게 어떤 것이 더 나은 정치체제인지 질문을 던진다. 다나카 요시키는 주인공 양웬리의 입을 빌려 부패한 민주주의가 유능한 황제가 다스리는 전제주의보다 훨씬 나은 정치체제라고 답한다. 인물이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민주주의는 정치의 실패를 국민 자신들이 오롯이 진다는 면에서 전제주의보다 낫다는 것이다. 전제주의는 정치의 실패를 타인(황제)에게 전가하는 일종의 비겁함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맨 앞에서 언급한 대한민국헌법 제1조2항으로 돌아가 보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선거는 국민이 가진 권력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정치에 관한 무지나 무관심은 국민에게 주어진 권력을 땅바닥에 팽개치는 행위와 같다. 투표해 봐야 정치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도 문제다. 일을 잘하는 정당은 투표로 지지해야 하며, 일을 잘하지 못하는 정당은 투표로 교체하여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증명할 권리와 의무가 유권자에게 있다. 정치의 실패로 초래되는 불행한 결과는 그 지도자를 선택한 국민 자신들이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여의주>는 만화로서의 재미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환기하며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에게 투표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