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보챠의 모험>, <망냐니 고양이 크라퓔> : 고양이, 멈추지 않는 모험가
[출처] 대원씨아이/카보챠의 모험/이가라시 다이스케
옆집까지 100미터, 그 옆집까지 500미터
고양이와 살면서부터 반려인과 반려묘의 일상을 다룬 만화를 즐겨 본다. 낯선 환경에 불안감을 느끼는 고양이 습성상 외출은 실종, 로드킬 등 다양한 위험을 초래해 반려묘는 실내생활이 상식이고 고양이 일상툰에는 대부분 집고양이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의 만화 <카보챠의 모험>은 시골을 배경으로 외출하는 고양이가 나온다. 고양이가 지붕 위에서 점프하는 역동적인 표지부터 심상치 않은 만화임이 느껴졌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자로 알려진 작가는 주로 젊은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만화 <카보챠의 모험>에선 본인이 직접 등장한다. 만화의 시간적 배경이 2007년임을 고려하면 농촌에서 홀로 농사를 짓고 수확물로 요리하는 생활상이 만화 <리틀 포레스트>의 모티브가 된 듯하다. 도시에 살던 작가는 돌연 옆집까지 100미터, 그 옆집까지 500미터 거리의 외딴집으로 이사한다. 화목난로로 난방을 하고 자급자족하는 환경에서 인간과 고양이는 서로에게 유일한 동반자다.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곰, 영양, 여우,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목격되고 때때로 왕새매와 부엉이까지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환경에 최하위 포식자 고양이가 외출을 하다니. 그러나 카보챠는 아침에 눈 뜨기 무섭게 밖으로 나간다. 작가는 짐짓 의연하게 일과를 보내지만 카보챠가 무사한지 촉각을 바짝 세운다.
[출처] 대원씨아이/카보챠의 모험/이가라시 다이스케
행복은 고통에 비례한다
작가는 카보챠의 외출을 막기보다 개발되는 야생성을 관찰한다. 잠자리를 잡고 쥐, 다람쥐를 쫓는 사냥본능을 지켜보다가도 뱀과의 대치상황엔 개입한다. 숲에 들어간 카보챠가 돌아오지 않을 땐 곰에게 공격당하지 않을까 혹시 공룡에게 쫓기진 않나 망상에 빠지며, 오랫동안 지붕 위에 서 내려오지 않으면 부엉이에게 잡혀갈까 봐 사다리를 들고 뛰어간다. 이처럼 외출고양이와 사는 것은 낙관과 불안이 혼재한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를 목숨을 건 모험. 해 질 무렵 카보챠가 의기양양하게 사냥감을 물고 귀가할 땐 경이로움과 안도감이 느낀다. 그저 카보챠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길 기도할 뿐이다.
[출처] 캣박스/망냐니 고양이 크라퓔/장 뤽 데글린
한편, 프랑스의 장 뤽 데글린 작가의 만화 <망냐니 고양이 크라퓔>의 주인공은 집 안에서 모험을 즐긴다. 이 까만 고양이의 이름은 크라퓔(Crapule). 프랑스어로 ‘망나니’라고 한다. 새끼고양이 때부터 반려인과 살게 된 크라퓔은 사회화가 덜 된 행동으로 초보 집사에게 당혹감을 안긴다. 평화롭고 조용하던 일상은 크라퓔 때문에 180도 변한다.
오케이, 청소해야겠군.
만화 <망냐니 고양이 크라퓔>은 2003년부터 인터넷에 연재된 4컷 만화로 20년 전 에피소드지만 시공간을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고양이가 사는 집이라면 거치는 통과의례가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책의 2/3 이상은 반려인의 ‘크라퓔 적응기’며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 이 만화를 먼저 보여 주고 싶다.
[출처] 캣박스/망냐니 고양이 크라퓔/장 뤽 데글린
성장기 고양이를 소위 ‘캣초딩’이라고 하는데 이땐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손(앞발)에 닿는 것은 찢고 어지르고 떨어뜨리고 망가뜨리며 온 집안을 들쑤신다. 집사의 몸도 놀잇감이나 놀이터로 인식해 깨물며 장난친다. 날카로운 발톱과 쉼 없이 뿜어내는 털은 어떤가. 집사는 고양이 때문에 난감해하고 불평하지만 크라퓔의 행동엔 악의가 없다. 고양이라서 그럴 뿐이다. 집사는 고양이의 행동을 분석하다가 결국 고양이다움에 체념하고 모든 것을 수용한다. 어느덧 크라퓔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꿈에서도 분주한 듯 잠꼬대하는 고양이를 보며 말한다. “모험 가득한 삶이구나.” 이제는 망나니라 이름 붙인 고양이가 평범한 일상을 완성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대부분 집고양이는 ‘크라퓔’처럼 살며 ‘카보챠’를 동경할 것이다. 실내생활에 적응한 고양이는 만족스러운 생을 보낸다고 하지만 그건 사냥꾼으로 살아 보지 못한 선택지 없는 삶이기에 마음 한구석에 부채감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카보챠처럼 자유로운 외출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근사한 실외 놀이터를 선물해 주고 싶다. 집사와 살아 주느라 사냥은 놀이로 사냥감은 사료로 대체한 고양이에게 오늘도 맛있는 간식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