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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문화센터> : 살짝 이상한 도토리들

<도토리 문화센터>/난다/카카오웹툰

2023-02-16 박민지

<도토리 문화센터> : 살짝 이상한 도토리들


[출처] 카카오웹툰/도토리 문화센터/난다

3의 공간

카카오웹툰에서 연재 중인 난다 작가의 <도토리 문화센터>는 다양한 강좌가 열리는 취미의 성지 문화센터를 배경으로 한다. 극 중 유니버스 그룹은 노른자 땅 한복판에 있는 도토리 문화센터(이하 도문센) 부지에 쇼핑센터를 건립하려 500명의 공동소유권자에게 땅을 사들이는 중이다. 이제 공동소유권자 4명만 설득하면 되는데 이들은 제값의 2배를 준대도 땅을 팔 생각이 없다. 그룹 내에서 무미건조한 일중독자로 통하는 고두리 부장은 이들 4명을 협상테이블에 앉혀 소유권 양도를 받아오면 본부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평소 취미는 시간 낭비라고 폄훼하고 회사와 집만 오가던 고두리는 도문센 수강생이기도 한 타깃에게 접근하기 위해 생전 처음 제3의 공간으로 향한다.

고두리는 공동소유권자들이 땅을 팔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고 땅을 팔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가족도 친구도 아닌 같은 강좌 수강생에게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고두리는 미행, 염탐 등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엿보고 엿듣는다. 업무의 일환이니 죄책감은 없다. 조직의 부속품으로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 내쳐질 신세, 마음은 가변적이지만 일에는 마음이 없으니 버려질지언정 명확하지 않나. 그러나 한 공간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감정이 싹튼다. 서로 모르는 걸 알려주고 칭찬을 주고받는 일은 마음에 남고 마음을 데운다. 마음 가는 곳에 몸이 따라가듯 고두리의 세계가 확장되기 시작한다.

[출처] 카카오웹툰/도토리 문화센터/난다

그들 각자의 서사

거대한 다람쥐가 웅크린 형상의 문화센터 건물은 다람쥐 앞니가 출입문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회원들이 바로 도토리다. 극 중 고두리는 이런 대사를 한다. “도토리는 다 같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도토리는 머리숱이 많은 상수리나무 도토리, 털모자 쓴 산갈나무 도토리, 알맹이가 홀쭉한 졸참나무 도토리 등 종류가 제법 많다. 문화 보급과 교류의 장인 도문센에도 도토리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베일에 가려진 회원 정중순, 괄괄한 성품의 수예반 강사 지옥길, 소심한 주부 회원 모미란, 도문센 회원이었으나 현재 행방이 묘연한 송수지를 비롯해 친구 만들기가 인생의 숙원인 남세미 회원이 그렇다. 평균 나이 70세인 캐릭터들은 주변에 있음 직한 평범한 인물이다. 그들 각자의 서사는 많게는 유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생애를 아우르며 캐릭터만의 깊이와 질감을 더한다. 타깃은 고두리의 음모(?) 덕분에 유니버스 그룹에 땅을 넘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변환점으로 작용한다.

[출처] 카카오웹툰/도토리 문화센터/난다

가령, 정중순은 고등학생 때부터 품고 있던 오래된 부채감을 해소하고, 모미란은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짜릿한 인생 후반전을 맞이한다. 이들은 주인공의 미션에 필요한 도구적인 캐릭터로 소모되고 퇴장하는 게 아니라 이후의 삶의 변화도 다뤄지며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여성이 주축이 된 여성 서사에서조차 지분이 적은 중장년, 노년 여성 캐릭터로 등장인물이 구성되었으며, 부모의 편애로 인해 상처받고 우정 때문에 고민하며 꿈이 있는 인간으로서 묘사된다. 그런 이유로 고두리는 웹툰 플랫폼 주 사용층인 젊은 독자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는 고두리의 시점으로 로드무비처럼 도문센 회원들을 경유하며 이들을 통해 각자 내면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있다.

만화를 기다리는 것

만화는 작가가 독자와 소통하는 매개체며 작가-독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난다 작가는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생활상을 진솔하게 담은 만화 <어쿠스틱 라이프>를 통해 일상툰의 일가를 이루었고, 독자와의 유대감이 상당히 끈끈하다. 독자는 스토리 만화를 그리겠다고 선언한 작가를 묵묵히 기다리며 응원했고, 작가의 신작에 열광했다. 만화 <도토리 문화센터>는 작가 특유의 감성과 유머, 인간을 향한 애정과 치밀한 스토리텔링 등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만화다. 이 살짝 이상한 할머니들의 성장담은 이제 중반부에 접어들었다. 마치 땅속에 묻히고 잊힌 도토리가 참나무로 성장하는 듯 매회 놀랍도록 감동적이다. 기다리는 만화가 있다는 행복, 이번 주도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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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