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제철은 지금> : 일상적인 음식에 스며드는 소수자의 삶
[출처] 창비/우리의 제철은 지금/섬멍
1. 음식에 스며드는 삶, 삶에 스며드는 음식: 푸드트럭, 도루묵, 죽순밥
나는 음식 영화를 좋아하는데, 나라에 따라 영화의 전개에 차이가 있다는 걸 발견하곤 혼자 흥미로워한다. 이를테면, 음식 영화의 명가 일본의 경우 한 박자가 느리다. 삭막한 도시에서의 생활에 지친 주인공 A가 시골로 내려온다. 평범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끝. 이와 달리, 서구권에서는 대개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고 노력하며, 필연적으로 갈등을 맞이하고, 결국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세부적인 내용이야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를 포함해 우리와 가까운 문화권에 있어 음식이란, 전반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art)보다는 삶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무언가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당장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연약해서 출렁이던 마음에 한 마디의 위로를 건네는, 그런.
[출처] 창비/우리의 제철은 지금/섬멍
갓 만든 따끈한 잡채, 푸드트럭에서 파는 기름진 목삼겹 바베큐, 어쩐지 고소해 보이는 도루묵과 입안에서 토독 터지는 알들, 간장 양념장에 솔솔 비벼 먹고 싶은 죽순밥. 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며 떠먹을 법한 스튜, 이름만 들어도 얼얼해지는 마라샹궈, 겨울에 어울리는 따끈한 국수와 새콤하고 톡 쏘는 겨자소스가 어울리는 해파리냉채와 냉면….
만화 <우리의 제철은 지금> 또한 음식과 삶을 한데 버무린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음식은, 어느 일본 요리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요리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완결되는 대신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요리하고, 그것을 먹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가치를 입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제철은 지금>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스며드는 삶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2. 평화롭지만은 않지만 그렇기에 익숙한: 스튜, 마라샹궈
[출처] 창비/우리의 제철은 지금/섬멍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일상이 고소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이로 조금씩 비집고 들어온다. 컷들 사이로 비치는 일상들은 항상 평화롭지만은 않다. 가까운 사람과 아주 사소한 일로 싸우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상에서 악의 없는 무례함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가라앉기까지가 아득한 짜증과 나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뻗치는 억울함, 알지 못하여 안부로 들리지 않는 인사와 나를 찾아오는 얼얼함. 각각 스튜와 마라샹궈로 표현되는 감정들은 그 음식들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겪을 법한 것들이다. 이렇듯 음식을 곧 일상으로 매끄럽게 이어낸 만화는, 이어 그가 말하고 싶었던 삶에 관해 얘기한다.
3. 그리하여 우리의 ‘제철’은 지금: 국수, 해파리냉채, 냉면.
[출처] 창비/우리의 제철은 지금/섬멍
<청아와 휘민>(레진코믹스), <타원을 그리는 법>(카카오웹툰)을 통해 여성 동성애자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지점들을 때로 직설적이고, 때로는 극적인 연출을 통해 끊임없이 직시하고 이를 말해 온 작가 섬멍은, 이번에는 만화 <우리의 제철은 지금>을 통해 그런 그들이 실재하는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담는다.
그렇게 초반에 동거인의 위치로 묘사되었던 망토는 실은 연인임을 밝히면서, 그들이 함께 삶이 평탄하기를 기원하지만(156쪽) 함께하는 과정 어디에도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채 사회가 허락한 인생의 통과의례를 치를 수 없고(175쪽), 서로의 삶에 책임감을 갖는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이를 증명할 수 없고, 보장받지도 못한다는 것에 무력함을 느끼기도 함(217쪽)을 작가는 말한다.
또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마찬가지로 매일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것을, 그리고 그들을 지지할 수 있는 그물망을 부재한 사회에는 자신과 같은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와 법을 마련할 것을 이야기한다.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지금을 제철처럼 보내길, 그리고 언젠가 그들에게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제철이 찾아오길 바라 마지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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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음식이 재료 손질에서 시작하여 먹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면, 비록 재료는 철이 아니어도 음식이 그것을 요리하고 먹는 이들의 상황에 적합하면 그것이 곧 제철 음식일 것이다. 일상 속의 제철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제철이 언제 올지를 고민하는 <우리의 제철은 지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