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 로맨스> : 코로나가 남긴 타인의 삶에 관한 교훈
코로나를 겪기 전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만화들은 아무리 익숙해도 결국은 남 이야기였다. <유일무이 로맨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탁무이’, ‘류민’ 등 연예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앞다투어 지극히 평범한 여자 ‘공유일’에게 호감을 품는다. 다각관계 로맨스의 유구한 전통을 감안하더라도 가난한 취준생 겸 작가 지망생에게 찾아온 톱스타와 최애라니. 어쩔 수 없이 판타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유일무이 로맨스>는 유사한 방식으로 연예계를 다룬 만화 중에서도 실제 유명인이 겪을 법한 연예계 생활의 현실감을 특히나 탁월하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하지만 연예계란 소문만 무성할 뿐 실상은 미지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어서 그 뛰어난 묘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별세계에 속한 일로 느껴졌다.
[출처] 네이버웹툰/유일무이 로맨스/두부
그런데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여러 차례 뒤집혔다. 느긋이 카페에 앉아 음료를 홀짝이는 일이 전생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낯선 군중 속에서 마스크 없이 무방비하게 내던져진 장면은 그 어떤 꿈보다 현실성 있는 악몽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창작물을 보는 일이 전에 없이 어색했다. 화면 속 배우들이 단지 마스크를 벗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 모든 장면이 픽션이라는 진실을 일깨웠던 것이다. 만화를 보는 일조차 그랬다. 마스크도 안 쓰고 돌아다니다니, 해외를 가다니,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다니, 그런데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역시 그림에 불과하구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코와 입을 내보이며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 하나하나가 몰입을 방해하는 과속방지턱이 돼버렸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유일무이 로맨스>를 보는 시선 또한 뒤집혔음을 깨달았다.
코로나 시대의 끝자락(제발)에서 <유일무이 로맨스>를 다시 보니 다른 무엇보다도 연예인 탁무이와 류민이 ‘마스크’를 쓴 것이 눈에 띄었다. 마스크가 연예인의 상징이 아닌 모두의 생필품이 되어버린 오늘날, 그것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모습으로 읽혔다. ‘탁무이의 마스크는 왜 각이 살아 있나, KF94인 걸까’ 하는 허튼 생각이 들 정도다. 하관을 가린 익숙한 외형에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뒤집힌 기준으로 만화를 보다 보니 미세먼지나 감염 문제와 상관없이 상시 마스크를 써야 하는 처지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갑갑함이란 정말이지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신체의 사용과 활동 반경을 제한당하는, 생리적으로 누리고 싶을 사소한 것들이 용납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경험해보고서야 피부로 와닿았다. 공유일을 좋아하게 된 탁무이가 그와의 데이트를 상상할 때, 그것이 죄다 ‘밴 안에서’ 김밥을 먹고, 한강 앞 ‘밴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밴 안에서’ 영화 보는 장면이기에 씁쓸해하는 모습 또한 코로나 시대의 독자로서 새삼 이입됐다. 편히 식당이나 카페, 영화관을 간다거나 봄날의 거리를 활보하며 꽃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바로 얼마 전까지도 톱스타 탁무이에게나, 독자인 나에게나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되게 슬픈 장면이었구나, 난 물론 밴은 없지만.
<유일무이 로맨스>는 판타지에 준하는 비현실적일 만큼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지만, 동시에 범죄 수사물의 결을 함께 품는다. ‘탁무이의 스토커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로맨스만큼이나 서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범인을 밝힐 수야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밝혀지기 이전까지의 과정에 좀 더 의미를 담아 되새기고 싶다. 택시에 탄 탁무이를 기사가 음흉하게 훑어보는 장면이나 거리의 행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 탁무이만이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연예인들 모두가 사소한 구설수에도 집요하게 시달린다. 일상이 공공재로 여겨지고 직간접적인 시선 폭력에 상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상기시켰다. 나아가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삶을 소비하는 대중으로서 나의 위치와 책임을 돌아보게 했다. 그러한 시선의 폭력에 나는 과연 아무 책임도 없었는지 되묻게 된 것이다. 연예인과 운명적인 만남으로 돌연 연인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판타지에 불과하겠지만, 유명인들을 향해 무심코 휘둘러 온 시선만큼은 실제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출처] 네이버웹툰/유일무이 로맨스/두부
이 글을 쓰며 새삼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자각한 한 가지 사실은 코로나에 관한 일련의 경험들이 과거형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긴 해야 하지만, 이제는 꽃놀이 가는 일이 사회적 물의가 되지도 않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이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아득하지도 않다. 지금 이 글도 카페에서 쓰는 중이다. 그러나 그런 갑갑하고 불안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코로나 시대가 끝나도 지속될 수 있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들 하지만, 낯선 일상을 체험해보고 나니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다. (바라건대 제발) 저물어가는 코로나 시대의 끝에서 <유일무이 로맨스>를 다시금 새롭게 읽는다. 힘겹게 얻은 교훈을 잊지 말자고 한 번 더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