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징멘트> : 밥벌이의 치사함과 순진함의 가치
[출처] 만화경/김오운/클로징멘트
클로징멘트란 영업직이 물건을 팔기 위해 고객과의 시나리오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클라이맥스와 같은 개념이다. 계약서에 서명하여 매매를 종결하는 순간으로, 한마디로 물건을 파는 사람이 고객에게 물건을 사게 만든 순간이자 쐐기인 셈이다. 김오운 작가의 <클로징멘트>는 영업사원이 물건 하나를 팔기까지 겪는 분투를 그리고 있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 정도를 원류로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직장인 장르물 중 하나가 아니게 만드는 힘은 <클로징멘트>의 주인공 캐릭터 유민우가 지닌 힘에 있다.
[출처] 만화경/김오운/클로징멘트
주인공 유민우가 가진 힘은 순진함이다. 그의 순진함은 유민우가 영업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는 시작부터 자세히 소개된다. <클로징멘트>의 주인공 유민우는 본래 자기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그러나 커피 로봇을 팔아야 하는 연희수 주임의 작전에 말려들어 카페를 폐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계략에 휘말려 본인 생업을 접게 되었으니 억울할 만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본인이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카페를 운영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연희수 주임을 따라 영업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지만, 유민우가 영업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상을 본인의 노력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찬가지로 순진한) 욕망 때문이다. 물론 그의 생업을 망쳐 놓은 연희수 주임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민우의 라이벌이자 조력자인 영업왕 강철제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이지만, <클로징멘트>가 유민우으 순진함을 독자에게 설득하는 방식은 인과가 아니다.
[출처] 만화경/김오운/클로징멘트
<클로징멘트>는 주인공 유민우의 순진함과 그가 발을 들인 영업 세계의 치사함을 대조하며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다만 <클로징멘트>는 영업 세계의 치사함을 나쁜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클로징멘트>가 치사함을 애환의 일종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데, 이는 주인공 캐릭터가 지닌 순진함이 윤리적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일종의 무대가 된다. 가령 고객에게 친절하게 선의를 베풀었던 그의 행동은 훗날 성과로 돌아오는 식이다.
분명 식상한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독자에게 유민우가 지닌 순진함을 설득할 수 있게 되는 이유,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전개가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는 이유는 <클로징멘트>가 그리고 있는 영업 세계의 치사함이 지닌 그럴싸함에 있다. 이는 과정상의 그럴싸함보다도 인물들이 기꺼이 치사해지는 동기에 있다. <클로징멘트>의 인물들이 움직이기는 가장 큰 동인은 생계다.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기꺼이 치사해지는 생존주의자들에 가깝다.
유민우의 순진함이 빛나는 부분도 그 역시 생계가 다급한 처지이지만 양심적인 세일즈와 선의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점에 있다. 본인에게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목표를 기꺼이 포기하고 선의와 양심을 쫓을 수도 있겠다는 주인공의 순진함은 <클로징멘트>의 치사함과 유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 이야기가 될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밥벌이를 위해 못 본 척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남을 속여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결국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주인공 유민우의 선택은 휴먼 드라마가 지닌 도덕적 판타지의 전형을 성실히 따르고 있다. 뻔하고 식상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작가들이 도덕극을 만드는 이유는 이러한 판타지가 도피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마지노선에 가깝다. 상식에서 벗어난 시대일수록 상식은 희소해지는 법이고, 희소해진 만큼 그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클로징멘트(글/그림 김오운)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