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가우스 전자>로 유명한 곽백수 작가가 <파견체>라는 작품을 통해 SF장르를 도전했다. 지구의 존속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전우주관리국에서는 지구로 ‘파견체’를 파견하여 인간을 관찰하고 보고하도록 한다. 주인공들은 이 파견체들로, 복제인간의 신체를 배정받아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으로 생활하며 편당 5만 원짜리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는 존재들이다. 파견체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정치가, 사상사, 연예인, 예술가 같은 직업은 선택할 수 없다. 하여 중산층, 소시민이 되어 현대사회에 스며들어야 한다.
[ 곽백수 작가의 네이버웹툰 '파견체' ]
1부까지 감상한 <파견체>의 인상은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다. 베테랑 작가의 안정감에 감탄하면서도 하위권에 머무르는, 그다지 화제를 끌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십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파견체>는 이선&이미사, 계운학, 도가도라는 각각의 캐릭터들의 서사가 맞물려 ‘전우주관리국’의 속내와 ‘지구의아이들’이라고 하는 적대조직의 실체라는 핵사건을 조직한다. 다중화자 서사 안에 ‘순정만화’류의 다양한 사랑을 집어넣고 그 서사 기저에 스릴러를 까는 구성은 읽을수록 강풀 작가의 작품을 읽는 기시감을 준다. 그래서 곽백수 작가 이 모든 것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해내는 안정감에 감탄하면서도 어딘가 올드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늘날 젊은 독자들이 지금의 로맨스 장르에 피로감을 느끼고 <파견체>를 뉴트로로 받아들이기엔 이른 감이 있고, 강풀시대의 독자들이 읽기에는 <파견체>에서 강풀과 다른 무언가를 찾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SF장르로서 인지적 확장을 할 만한 논의거리가 부재하다. 데이비드 시드의 지적처럼 SF장르는 한 마디로 정의되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고 다양한 하위 장르와 공유하며 장르적 진보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1).
그럼에도 SF가 무엇이냐는 막연한 물음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시뮬레이션, 존재론적 물음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파견체>는 그런 요소를 찾기 힘들다. 복제인간에 깃든 파견체의 일상은 점점 인간과 닮아가는 상황은 우민호 감독의 영화 <간첩>이 생각나는데 남파간첩이 자본주의 사회에 동화되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소 ‘먹고사니즘’을 실천하는 상황이 <파견체>와 똑같다. <간첩>이 머리는 주체사상이지만 몸은 자본주의인 아이러니에서 코미디를 의도했다면, 자본주의에 물든 인외 존재는 무슨 작품의도가 있는 것일까? 파견체들은 인류의 존속을 평가하는 존재로서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야 하는데 작품 속 파견체들은 너무 쉽게 인간과 동화하면서 인간에 대한 시니컬보다 따뜻한 휴먼 드라마 면모가 강조된다. 이것을 ‘따뜻한’ SF 장르라고 해석해야 할까?
따라서 이미 60화까지 읽었지만 작품의 본격적인 이야기와 평가는 2부에서 시작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1부에서 주인공들의 갈등을 해소 시키고 2부에 들어서자 <파견체>는 파견체와 ‘지구의아이들’이라는 적대조직의 대결을 본격화 한다. 액션, 반전, 흑막의 등장은 SF장르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파견체와 전우주관리국에서 파견 나온 감시인 ‘시바’, 인류를 지키기 위해 파견체를 죽이는 ‘독고장’의 삼파전은 곽백수 작가가 <파견체>라는 작품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이제는 말해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다만 1부에서 파견체의 애환을 보고 이해했음에도 인류를 지키기 위해 위험요소인 파견체를 죽이려는 ‘지구의아이들’의 행동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지는 와중에 앞으로 <파견체>가 이 문제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1) David Seed,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Up,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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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지성이 온 우주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
빅뱅 38억년 한 지성체의 폭주로 우주 종말의 위기를 겪은 우주의 지성체들은 '전우주관리국'이란 연합기구를 만들어 우주 전체의 지성체들을 감시 통제하고 있다.
이미 지구도 300만년 전부터 인간을 복제한 '파견체'들이란 존재들을 통해 비밀리에 감시를 받아오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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