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날, 과학 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이라고 받은 성냥으로 불장난을 했다. 불을 붙인 성냥을 실험대의 배수구에 던지면 성냥이 젖은 배수구의 거름망에 떨어지면서 연기가 났다. 그것이 어린 나이에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플라스틱으로 된 거름망은 성냥들의 열기에 그만 녹아버렸고, 호랑이로 유명했던 담임선생님은 범행이 의심되는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사실을 따져 물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체벌이 만연한 시절이었다. 나는 매가 무서워, 내가 하지 않았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다른 친구가 불장난을 했다고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무고한 친구 A가 나 대신 매를 맞았다. 교탁 앞에서 체벌을 당하고 있는 A를 보며 어린 내 마음에도 함께 멍이 들었지만 선생님의 인정사정없는 회초리가 더 무서운 나머지 끝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 울고 있는 A에게 사과도 하지 못했다. 미깡 작가의 <거짓말들>을 읽은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거짓말에 대한 경험담이다.
<술꾼 도시 여자들>, <하면 좋습니까?> 등 현대 사회 문제에 기반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미깡 작가의 신작, <거짓말들>이 발간되었다. 제목 그대로 ‘거짓말’을 소재로 한 아홉 가지 단편을 엮은 단행본이다. 의도나 사실이 발화 내용과 다를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발화를 거짓말이라고 일컫는다. <거짓말들>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소한 거짓말부터 다층적인 의도를 가진 거짓말과, 거짓말이 아님에도 거짓이라고 믿고 싶은 이야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소재로, 여기에 대한민국 사회를 꼬집는 비판의식과 인간관계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시선을 더했다. 9개의 단편이 모두 빛나는 작품이지만 지면 관계상 일부만 소개하자면, 표제작인 <A의 거짓말>·<나만 아는 거짓말>은 친족 성폭력, <도둑맞은 얼굴>은 직장 과로 문제를 다룬다.
차라리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현실을 목도할 때, 이를 창작을 매개로 예술로 승화시켜야 할 때, 창작자라면 누구나 키보드 앞에서, 또는 펜을 들고 주저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럴 때 ‘추상화’라는 도구는 얼마나 간편한가? 하지만 미깡 작가는 용기를 낸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논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뉴스에 나올법한 극단적인 케이스를 불러와 재현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알고도 모른체하거나, 알면서도 수군거리고 불평하고 끝나곤 하는 이슈들을 소환한다. 대놓고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사회에서 손해 볼까 봐, 경쟁에서 밀릴까 봐, 혹은 백래시(backlash)를 맞을까 봐 숨기기 급급하고 피하려고 하는 것들을 미깡 작가는 직시한다. 미디어 인터뷰와 에세이에서도 그녀는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자랄 한국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솔직하다. “당연히, 두말할 것도 없이 성평등한 사회죠!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1)
사람들은 선한 의도를 갖고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거짓말에 대해 특별히 관대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되는’ 거짓말인 것이다. ‘그렇게 말해도 된다’에는 원칙적으로는 잘못된 발화 행위이지만 의도와 결과에 따라 잘못된 수단의 선택은 용납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그래도 되는’ 사람도 있을까? 아니, 없다. 의도가 어쨌든, 결과적으로도 원칙적으로도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거짓말은 수단이지만 사람은 수단이 될 수 없으므로. 결국 <거짓말들>은 말한다, 우리 모두는 목적 그 자체이므로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도 없다. 물론 현실에 맞부딪히기에는 우리 대다수는 작고, 흩어져 있고, 또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 미깡 작가는 말한다. “이제라도, 남은 이들이라도 계속 살아야지. 살게 해야지. 그러려면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한다. 엉망진창이라도, 아니 엉망진창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다.”2)
1) 김재희, “분홍·치마·공주... 성평등 엄마도 막지 못한 ‘핑크기’ 베이비뉴스, 2020.04.06.,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4281
2) 미깡, “우리는 엉망진창이니까 서로를 도울 수 있어” 한국일보, 2023.05.05.,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50220190005051
|
웹툰 『술꾼도시처녀들』에서 술을 좋아하는 세 친구들의 리얼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학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그리며 폭풍 공감을 불러일으킨 미깡 작가. 그가 ‘거짓말’을 주제로 한 테마 단편집을 선보인다.
[ 작품 정보확인 및 감상하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