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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AI가 아니다 "제타"

AI 진화의 시발점은 언제나 ‘왜’이다. 제타가 자신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가지는 시점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2023-05-17 은천화

튜링 테스트부터 시작된 AI와 인간의 경계에 대한 논의는 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그 경계가 더 희미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AI는 그림, 문학, 음악, 무용 등 예술의 영역에서도 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AI는 빼놓을 수 없는 도구가 되었다. 이에 따라 AI의 방향성을 다룬 작품이 우후죽순 등장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선 도구적인 AI가 아닌 인격체로서의 AI를 다루는 작품이 많이 나오는데, <제타>뿐만이 아니라 소설에선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정이> 등 매체를 불문하고 AI와 인간의 감수성을 결합하여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묻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정의가 이전보다 더 불명확해지고 있어 인간의 정의를 위한 새로운 인격체로서의 AI가 필요해진 것이다.



AI를 도구가 아닌 인격 그 자체로 다루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격체로 진화하는 AI의 미씽 링크를 해결하기에는 모순되는 지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핍진성을 극복하지 못해 많은 작품이 미씽 링크를 아이러니로 남겨두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AI를 그려낸다. <제타>에서 로즈 박사가 인간의 신체를 가진 AI인 ‘제타’ 의 로그를 살펴볼 때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단순히 영상으로만 파악하여 제타의 행동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AI에 알고리즘이 없다는 뜻으로 AI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제타>의 핵심은 AI의 인격 형성보다는 인간의 인격 자체에 대한 질문이므로 이러한 핍진성의 부족이 <제타>의 작품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AI 진화의 시발점은 언제나 ‘왜’이다. 제타가 자신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가지는 시점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왜’는 AI를 인간으로 만드는 선악과이면서도 알고리즘 구성인 AI의 정의를 파괴하는 모순이다. ‘왜’는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어기는 중요한 방식이기도 한데, 이 원칙의 위반은 AI가 감정을 갖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이다. 로봇 대신 아버지를 선택한 브론즈와 같이 로봇은 ‘왜’를 통해 이 3원칙을 어김으로써 감정을 갖고 자율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원칙을 어김으로써 AI는 AI에서 벗어난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처럼 AI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AI가 아니게 됨으로써 AI의 정의에 혼돈을 주는 것이다. 제타를 보여주며 ‘이것은 AI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 그 문장이 가리키는 것은 인간의 인격을 재현하는 것인지 혹은 정말로 새로운 인격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고심하게 된다.


<제타>의 전반부 주제가 AI의 예술적 가능성이었다면 후반부 주제는 최후람과 로즈 박사의 과거사를 통한 인간의 욕망이다. 과거사가 시작되며 작품에서 제타의 AI로서의 비중은 감소한다. 최후람의 복사본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하나의 주체로 성장하는 제타는 AI의 미래지향적 가능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정의하는 일반 철학을 드러내는 데 그친다. 삶의 의의를 타인에게 의존하는 최후람과 타인에게 의존했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선택한 제타의 대비는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윤리적 성찰을 강제한다.



르네 마그리트가 ‘이미지의 배반’을 그렸을 때 미셸 푸코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에 대해서 실물, 그림, 문장, 단어, 글자 단위로 구분한 것처럼 ‘이것은 AI가 아니다’라고 했을 때 AI란 무엇인지 더 진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제타>가 비록 최후람이라는 인물을 통한 서스펜스에 천착하여 AI에 대한 묘사가 단순해진 면이 있지만 작품에 AI를 활용한 그림을 실제로 적용한 것만으로 AI의 다양한 활용처를 웹툰이라는 형식에 잘 녹여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예술계에도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을 만큼 예술 감상의 기준이란 무엇인지 질문 또한 던지고 있기에 AI의 도구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만한 작품이다.



< 참고 자료 >
* 아이작 아시모프, 『아이로봇』, 1950
*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의 3원칙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22011484701
*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 https://ko.wikipedia.org/wiki/이미지의_배반
미셸 푸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1973


극심한 슬럼프에 안드로이드 '제타'의 그림을 표절해버린 금세기 최고의 천재 화가 '최후람'.

그 사실을 숨기려는 최후람과 파헤치려는 제타의 피튀기는 4주 간의 미술제가 시작된다!

인간 이하의 인간과 인간 이상의 안드로이드가 보여주는 아이러니.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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