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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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차사의 달콤한 기억 케이크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나의 장례식 케이크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죽음 이후에도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

2023-05-18 김진철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죽음. 한 번 죽음의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은 사후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누구도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기에 이승의 죄를 심판하는 지옥들을 상상해 내고, 다음 생(生)으로 이어지는 환생의 길을 그려냈다. 또한 유토피아 같은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꿈꾸기도 했다. 이승의 존재가 저승의 존재로 전환이 되는 순간은 아직까지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초현실의 현상이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의 상상도 마치 평행 세계처럼 공존할 수 있다. 



기억을 담은 케이크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의 세계에서는 죽음 이후 망자들이 연옥의 벌판을 건너 환생문으로 향한다. 49일에 걸쳐 연옥의 벌판을 지나는 동안 그들은 이승에서 망자를 위해 올리는 케이크를 먹으며 견딘다. 장례식 케이크의 재료는 망자와 관련한 기억이다. 망자가 좋아했던 과일, 꽃, 노래, 영화, 취미, 장소 등으로 케이크의 재료를 결정한다. 심지어 말과 글, 노래 같은 것도 재료가 된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케이크에 연옥의 엔지니어가 만들어낸 ‘케이커세트 플레이어’로 말을 들려주거나, 연옥의 잉크 ‘사옥수’로 케이크에 글을 쓰고, ‘음향반죽기’로 노래를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망자와 관련한 어떤 것이라도 케이크의 재료로 가능하다. 

장례식 케이크는 생전에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마지막 편지와도 같다. 망자에게나 산자에게나 서로의 소중한 순간을 나누는 매개체이다. 기억이 들어 간 케이크의 맛은 어떨지 상상해 본다. 우리는 추억이 얽힌 음식을 먹을 때 예전의 기억이 반추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치 환영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시간과 공간이 특별한 경험으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음식에 기억을 담는 요리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용기를 주는 케이크

작가가 그려낸 사회의 특이점은 인간으로만 구성된 공동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마에 눈이 하나 더 있는 사람, 밤에만 트럭운전수 일을 하는 뱀파이어, 아가미가 달린 어수인(魚水人) 가수,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고양이 등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실 죽음을 맞는 것은 인간만 겪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동물과 식물은 물론이고, 비인간적인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역시 죽음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더 나아가 드넓은 우주도 언젠가는 마주해야할 숙명이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는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 

하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겉모습이 조금 다르다는 것만으로 삶이 순탄하지 않다. 가족의 횡포에 몸과 마음이 상하기도하고, 대중의 편견과 싸워야 했다. 다행히 그들 곁에는 마음을 나누는 이들이 함께 했다. 덕분에 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좋은 기억을 갖고 연옥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보내는 선물인 케이크를 먹으며 벌판을 지나 환생문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케이크를 만드는 저승차사

연옥당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마고는 원래 까마귀신이자 저승차사였다. 달달한 케이크를 무미건조한 이미지의 저승차사가, 더구나 화려한 케이크를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까마귀가 만든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승에서 망자들을 위해 케이크를 만들던 그가 이승에 내려와 장례식 케이크를 만드는 이유는 의미심장하다. 연옥에서 다음 세계로 가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이다. 4개의 에피소드의 이야기들은 모두 해피엔딩이다. 그 이야기 속의 망자들은 분명 환생문으로 향하리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무관심 속에 사라져간 생명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망자들에게는 이승의 기억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자살율이 1위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바로 그런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닐런지. 

 

나의 장례식 케이크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죽음 이후에도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 연옥의 벌판의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줄 기억은 무엇인가. 그 기억의 소중함을 알고 싶다면 어디에선가 달콤한 향을 내뿜고 있을 연옥당을 찾아가 보기를. 




“어떤 케이크를 주문하시겠어요?”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구워내는, 당신을 위한 마지막 레시피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장례식 케이크를 만드는 ‘연옥당’.


[ 작품 정보확인 및 감상하기 ]



필진이미지

김진철

동화작가, 만화평론가
《낭이와 타니의 시간여행》, 《잔소리 주머니》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