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던 무렵 몇 달간 반려견을 원했던 적이 있다. 어떤 특정한 종을 원한 건 아니었고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소형의 개면 되었다. 그러나 하루 대부분 집이 비어있었기에 내게 반려견은 허락되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고집이 센 편이 아니었던 터라 금방 체념했다. 이후로도 반려동물은 쉽게 허락되지 못했는데, 대학생 때에는 안정적인 수입도 마땅한 공간도 없었으며 두 조건이 갖춰졌을 때는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도 간혹 반려견을 키우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했고 어떻게든 그들과 연을 맺어서 반려견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내가 만난 반려견 대부분은 작은 소리에도 예민했고 반려인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에는 강아지라면 어떤 사람이든지 좋아한다는 편견 때문에 아주 섭섭해했는데, 이후 여러 콘텐츠로 개를 접하고 여러 특성을 알게 된 뒤로는 억지스러운 관계는 더 이상 맺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몰래 훔쳐보며 괜히 냄새 한번 맡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2021년에 진행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섰다는데, 길에서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만나는 것이 이젠 어렵지 않은 점만 보아도 많은 인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털북숭이들이 팍팍한 일상 속의 한 줄기 단비와도 같았다. 이런 반려동물은 웹툰 내에서도 톡톡한 감초 역할을 해냈다. 일상툰의 귀염둥이를 넘어 반려동물 웹툰이라는 하나의 주제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웹툰 시장에서 일상툰 제작이 줄어든 시점에서 <모죠의 일지>로 큰 인기를 끈 모죠 작가는 판타지가 가미된 반려동물 웹툰인 <마루는 강쥐>로 또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인기에는 ‘강아지가 사람이 된다면’이란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법한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과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들 때문일 것이다.
익명의 반려인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반려동물을 다룬 웹툰 대부분은 일상툰과 그 맥락을 함께 하기에 개인과 반려동물에 집중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따라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공감이 끈끈한 유대를 만들고 이로 하여금 작가는 팬을 만들어 웹툰을 종착지까지 견인해 간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작가와 반려동물의 종, 생활 환경 등의 교집합이 많을수록 유대는 끈끈해지며 반려동물이 없을 경우엔 애당초 접점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여러 반려동물 웹툰을 시작해서 끝맺지 못하고 중간에 하차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약한 유대감 때문이었다. 귀엽고 재밌지만 결국은 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런 점을 고려 했을 때, <개를 낳았다.>의 경우 일반 반려동물 웹툰에 비해 포괄할 수 있는 독자 폭이 비교적 넓다. 일상에서 반려견을 만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이선 작가의 <개를 낳았다.>를 읽기에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감정을 몰입했던 대상은 주희였다. 주희는 대학에 다니며 만났던 이들과 닮아있었다. 타향살이에 지쳐있던 그들은 어딘가에서 반려견을 데려왔고 그 강아지들은 모두 정확한 품종을 델 수 있었고 시골에서 흔히 보이던 강아지들과는 모질부터 달랐다. 한번은 동기 여럿이 학교 앞 술집에서 건하게 술을 마셨는데 며칠 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신나게 놀았던 이 중 하나가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술에 취한 우리는 그 친구의 강아지를 보러 비틀거리며 자취방에 놀러 갔었다. 다른 친구는 어두운 3평짜리 원룸에서 키우던 개의 잔 짖음이 심해지자,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늘 사람이 있는 고향 집으로 개를 보냈다. <개를 낳았다.>의 주희를 보며 사회 초년생으로 겪는 어려움에 공감했고, 내가 만났던 미숙한 주인들을 떠올렸다. 현실의 이야기가 으레 그랬던 것과는 달리 주희는 주주를 잃어버렸던 경험으로 큰 깨달음을 얻어 완전히 다른 견주로 다시 태어난다.
이선 작가는 초반에는 아주 선명하게 현실적인 인간을 캐릭터로 내세우는데 이들은 대체로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성장해 새로운 캐릭터로 탈바꿈한다. 웹툰 내에서 ‘몽이 엄마’로 불리던 선희 역시 그런 인물이다. 선희는 동네 반려견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데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제단하고 자신이 생각한 옳음에 맞지 않는 견주를 커뮤니티에서 왕따시키기도 한다. 그랬던 선희는 섣부른 강아지 입양과 파양으로 동네 커뮤니티에서 역으로 배제당하고 이로인해 한 번의 깨달음을 얻는다. SNS를 보면 심심치 않게 몇 장의 사진, 60초짜리 짧은 영상만을 보고 반려동물과 보호자를 완벽히 파악해서 조언을 가장한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선희는 그런 인물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경솔한 행동으로 갑작스럽게 강아지 임시 보호(이하 임보)에 참여하게 되고, 임보 강아지들을 입양 보내며 지난날의 실수와 잘못을 뉘우치고 성장하게 된다.
이렇듯 <개를 낳았다.>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독자일지라도 곳곳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놀라운 점은 한 명의 빌런 캐릭터의 등장으로 뜨거워진 댓글이 해당 캐릭터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는 캐릭터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댓글이 남는다는 점이다. 이는 이선 작가가 날카롭게 반려견과 보호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그 각각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부드러운 전개로 그려내 많은 독자가 빌런으로 여겨졌던 인물의 상황을 이해하게 한다. <개를 낳았다.>를 통해 간접으로 경험한 이선 작가의 세계는 때로는 차가웠지만 누군가의 실수를 포용하는 인물들과 개인의 실패로 성장하는 인물 덕에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타인의 반려동물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지금, 비반려인으로서 <개를 낳았다.>를 읽으며 공감하고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독자일지라도 <개를 낳았다.>를 읽어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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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너와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처음으로 반려견을 키우게 된 다나와 모든것이 처음인 강아지 명동이가 만나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강아지 수명 20년. 너와 내가 함께하는 20년 동안 우린 어떤 일을 겪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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