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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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존재라는 위안

완결 이후의 <지구의 주인은 고양이다>에 대한 짧은 생각

2023-06-02 이현재

광고 기획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3B라는 모델이 있다. “Baby(아기), Beauty(미인), Beast(동물)”의 앞글자를 따온 이 모델은 소위 “광고의 치트키”로 불린다. 그만큼 많은 사람의 이목을 한 곳에 쉽게 주목시킬 수 있고, 대중을 설득하기도 쉽다. 3B가 어떻게 인간의 인지를 붙잡아 두는지 확실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길은 없다. 다만, 인지 과학을 비롯한 학계는 대체로 인간은 긍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즉, 3B는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인지 또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처럼 3B에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콘텐츠 기획에 있어 캐릭터의 옵션을 특정한 범주로 줄여준다는 것, 그리고 콘텐츠 생산의 이유・효과・실체를 하나의 소구점으로 정리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획의 방향을 선형화하여 창작의 순서를 정리해준다는 것은 콘텐츠의 생산자 입장에는 엄청난 장점이다. 다만, 활용이 다른 기획 모델에 비교해 쉬운 만큼 캐릭터의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은 어렵다.

2020년 3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약 1년간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웹툰을 통해 연재된 HON 작가의 웹툰 <지구의 주인은 고양이다>(이하 ‘지주고’)는 3B를 잘 활용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지주고>를 두고 다양성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는 어렵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작품 자체보다 콘텐츠의 소비방식과 유통과정, 그리고 완결 이후의 행보에 있다.

<지주고>는 작품 자체보다 밈으로 더 유명한 콘텐츠다. 실제로도 아래의 그림과 같은 “아가멈뭉?” “냥 젤리 봐버렸다” 등의 밈을 통해 대중에게 먼저 알려졌다. 바이럴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타온 <지주고>는 199화로 완결된 이후 주인공 캐릭터 치치를 중심으로 한 SNS 계정을 개설, 트위터(chichi_ZJG)와 인스타그램(chichi_zjg)에서 후속 콘텐츠를 생산 중이다.


(출처: 카카오웹툰 / <지구의 주인은 고양이다> / 디앤씨미디어)

 

주목할만한 점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의 후속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가 <지주고>의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치치의 SNS 계정은 <지주고>의 에이전시인 D&C웹툰비즈가 2022년 10월에 개설했다. <지주고>가 인기리에 완결되자 ‘치치’라는 캐릭터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 완결 이후 작가의 영역을 벗어나 캐릭터로서 콘텐츠의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는 셈이다.

2023년 5월 기준으로 치치의 SNS 계정에는 트위터 673명의 팔로워, 인스타그램 2776명의 팔로워가 따라붙었다. 치치의 SNS 계정의 팔로워 숫자가 충분히 유의미한 지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주고>의 소비 과정은 파편화된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캐릭터가 존속하여 생명을 지속할 수 있는지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출처 : 트위터(chichi_ZJG) / 인스타그램(chichi_zjg))

 

물론 그 중심에는 화폐로 환원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지주고>의 사례를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 파악하고, 이를 이익의 논리로 계량하는 것은 <지주고>의 사례를 절반만 파악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캐릭터가 작가의 영역이 아닌 관심 경제가 창출한 체계의 자산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캐릭터에서 시작된 소비가 창작자가 부가한 서사를 통해 맥락을 부여받고, 이를 통해 관심 경제의 중핵요소가 되는 성향(predispositions)으로 분류되어 최종적으로는 자본으로 귀결되는 체계의 과정 내에는 필연적으로 대상에 생산성을 요구하는 폭력성이 내재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콘텐츠가 주어진 규격을 벗어나 캐릭터로서 그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캐릭터라는 대상 그 자체가 지닌 가치가 아닌 대상 외의 요소들 덕이다.

이즈음에서 동물(Beast)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인지를 공급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일상의 체계 속에서 대상을 환원하고 생산을 요구하는 폭력 밖으로 벗어날 힘이 없다. 그 과정을 체화하면서 그래도 아직은 자신이 무언가를 돌볼 수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위안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콘텐츠를 존속하는 마음도 그와 같지 않을까?



지구 정복을 꿈꾸는 고양이 '치치'와

인간이 좋은 강아지 '모랑',

그리고 하드보일드 야생햄스터

'카이사르 강태식'의 좌충우돌 지구(?) 정복기,




필진이미지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