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바깥에서 밀려 들어오는 자신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부적절하거나, 자신을 자신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계의 궤도 속에서 어디에 위치되어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자각 ‘이후’에 자신의 위치가 이 쯤이 맞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으로 그들은 자신의 궤도 바깥으로 탈출하고자 한다.
이제 [순정 히포크라테스]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웹툰에서 직접적으로는 한번만 등장하지만, 무수히 변주된 형태로 활용된 문의 비유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배움이란 건 닫혀 있는 문을 열고 저 너머를 보는 거야. …(중략) 한번 저 너머를 보게 되면 문을 열기 전으론,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기 전으론 돌아갈 수 없어’ (시즌 2 12화)
웹툰의 주인공인 사해와 ‘사라져 버린 재능있는 여자’인 소원의 대화에서 등장한 이 대사는 순정 히포크라테스가 다루고 있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Parrhesiast)’ 에 관한 욕망을 직접적으로 지시한다. 순정 히포크라테스의 배경이 ‘의대’인 것은 웹툰의 장르를 위해 소환된 인위적 장치가 아니라, 각 등장인물이 지닌 욕망의 공통적 도착지가 의대였기 때문이다. 박보듬은 레즈비언이 병이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에서 욕망을 느끼고, 사해는 어릴 적 겪었던 고통의 원인에 대한 설명에 욕망을 느껴 의대로 진학한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이 각 등장인물들의 특수한 젠더-계급적 위치, 아니 보다 정확하게 ‘여성’이라는 지위에 의해 반복적으로 실패한다는 점이다. ‘여성’이라는 지위에 의해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것에 끝끝내 실패하고, 여성의 실패가 반복되길 원하는 사해의 할머니 ‘임끝녀’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임끝녀는 소원의 말에 따르면 “알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일 뿐 모르는 건 아닌 사람(37화)”이며, 문 너머를 보고 난 후의 자신이 두려워 문을 열기를 외면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한자를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무수히 많은 한자를 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임끝녀는 사해 또한 문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한다. 사해가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면, ‘여자의 분수에 맞게 살라’는 가부장제의 엄숙한 명령으로 임끝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할머니는 사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해는 “집 주인들이 자야 하니 방에서 함부로 나가지 말라”는 할머니의 명령을 거부하고 방 밖으로 나가, 문 너머에 있는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사람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사해가 의대에 도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해는 7살때부터 방으로 나가 문 너머를 본 사람이며, 할머니가 위치시킨 궤도 바깥으로 탈출을 꿈꾸는 자이다. 사해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리 없다.
사해가 서재에서 우연히 만난 유바로의 어머니인 소원은, 사해의 할머니가 “돈 잘 버는 남편”한테 시집와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설명한 바로 그 ‘소원’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불행한 모습이다. 할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나온 사해와, 할머니를 비롯한 사회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지만 불행한 소원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여성적 계보를 발견한다. 임끝녀 – 소원 – 사해 로 이어지는 계보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수용한 자 –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한 자 – 포기하지 않는 자로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지시한다.
이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임끝녀 – 소원 – 사해와 같이 (능력주의에 토대를 둔)여성 주체의 발전이 아니라, 임끝녀와 소원 모두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수용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임을 강조하고 싶다. 임끝녀는 가부장제가 위치시킨 궤도 속 자신의 위치가 진정한 자신의 위치인지 의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의심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위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와 불화하는 여성을 사회와 화해시키는 대신, 왜 그들이 불화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는 [순정 히포크라테스]는 바로 그러한 전략을 통해 주인공들을 위치지어진 궤도에서 탈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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