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야기를 부탁해
다양한 매체에서 여성 서사는 지속해서 창작되고 있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순정 만화 주인공’의 전형성을 제거한 다양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다. 웹툰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여성의 모습이 웹툰에 등장하면서 ‘엄마’가 등장하는 웹툰도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엄마’의 이야기만으로는 주류를 차지하지 못한다. 대부분 엄마는 보통 일상툰에서 작가의 어머니로, 자녀와의 케미를 통해 일상의 재미를 더하는 보조적 존재(대표적으로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나 자까 작가의 대학일기, 독립일기 등)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육아를 하는 주체로서의 ‘엄마’(쇼쇼 작가의 아이 키우는 만화 등)가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육아의 일상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 속 ‘엄마’의 존재는 여성 서사의 폭을 넓히기보다 양육하는 주체로서의 일상만을 주목한다.
‘엄마’가 주체가 되어 일상이 아닌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작품은 많지 않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뗀 하나의 존재로서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과 매미·희세 작가의 <위대한 방옥숙>이 있다. 이외에도 정영롱 작가의 <남남>도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전형적인 엄마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여성으로서의 서사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우리는 이제 엄마, 아니 여성으로서의 엄마 이야기가 필요하다.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모성애를 지닌 엄마로 뭉뚱그린다면 엄마를 이루고 있는 복잡한 서사가 매몰되기 때문이다. 늘 잊고 있지만 엄마 또한 여성이다. 엄마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여성 서사는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발화할 수 있다.
엄마의 ‘라떼’는 말이야
여성 서사로서 <왕년엔 용사님>이 차지하는 자리는 독특하다. 엄마의 화려한 ‘라떼’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명옥’은 과거엔 이세계를 구한 영웅이었다지만, 현재는 더 이상 아름답지도 어리지도 않은 평범한 49살 동네 슈퍼 아줌마에 불과하다. 남편과 사별 후 고등학생인 똑똑한 아들과 평범한 딸 두 자녀를 키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의 영광인 ‘영웅’으로서의 삶이 명옥의 평범한 삶을 무너뜨리는 촉매가 된다는 것이다. 마왕을 봉인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고 지구로 돌아온 명옥은 모종의 이유로 시공간의 착오가 생겨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는다. 이로인해 명옥은 평범이라는 조건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두게 된다.
이세계의 마왕을 봉인하고 2년이 지난 후 마왕의 부활하려는 상황이 발생하자, 비젠타 왕국의 왕녀 루카와 동료들은 도움을 청하고자 과거의 영웅인 명옥을 찾아온다. 하지만 명옥의 시간은 20년이 흐른 뒤다. 모든 것이 변화한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구원을 바라는 옛 동료들의 요청을 명옥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타적으로 살아왔던 명옥이 다시 찾아온 과거의 동료들에게 날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가족, 자신의 사촌 동생과 딸이 연관되자 극도로 예민해지는 명옥의 모습은 영웅보다 엄마의 삶이 훨씬 중요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웅의 의무와 엄마의 가치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엄마’를 선택하는 명옥의 모습은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문제는 명옥의 딸 민하다. 민하는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당부와는 달리 특별한 삶을 꿈꾼다. 민하는 엄마의 옛 동료들과 얽히면서 과거의 엄마를 궁금해한다. 혹시 자신도 엄마처럼 영웅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민하는 모르는 명옥의 삶의 궤적을 쫓을 때, 엄마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엄마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사랑의 방식이 어긋나면서 마왕과 엮이는 사건이 벌어지며 명옥과 민하는 원치 않았던 이세계에서의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완전하지 않은 존재, 엄마
<왕년엔 용사님>에는 두 명의 엄마가 등장한다. 바로 명옥과 아르틸이다. 둘의 ‘모성’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인다. 명옥은 딸 민하를 사랑한다. 하지만 명옥은 민하에게 자신의 가치를 종용한다. 특별하면 안 된다고. 무조건 평범하게 살라고 강요하며 민하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 또한 하지 않는다. 민하가 믿고, 원하는 가치는 사랑과 보호의 이름으로 무시된다. 명옥의 사랑의 방식은 일방적이다. 명옥은 자식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줄 수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민하의 미숙함을 이유로 통제를 요구하는 명옥의 모습은 답답해 보이지만, 지나치게도 현실적인 ‘지금-여기’의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아르틸은 냉정한 엄마의 모습을 드러낸다. 모성애가 전제된 엄마가 아닌 ‘상사’로서의 엄마. 태어날 때부터 결격 사유가 있는 딸을 도구로 삼아 사랑을 인질로 충성을 요구한다. 루카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랑받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한다. 인정 욕구에 기인한 애정 결핍 상태가 지속되면서 루카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포기한다. 아르틸은 권력의 도구로서 성장했기에 루카에게도 동일하게 권력을 유지시키는 삶을 최우선으로 두고, 충족하지 못하자 바로 버리고 만다.
엄마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기조로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어떤 방식으로 사랑받으며 성장해왔는지가 엄마로서의 기본적 소양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가치에 따라 바뀔 수는 있지만, 자녀에 대한 올바른 사랑의 방식을 당연히,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을 구한 용사도 누구보다도 강력한 왕도 모르듯 말이다.
Who am I?
<왕년엔 용사님>은 돌고 돌아 결국에는 엄마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다. ‘엄마’ 이전의 ‘명옥’에 집중하기 위해 명옥을 이루고 있던 조건들을 제거해낸다. 마왕을 봉인할 수 있는 힘과 사랑하는 딸을 잃는 사건을 통해 오히려 명옥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 밤에 자꾸만 사라졌던 명옥이가 정작 명옥이 모르던 ‘진짜’ 명옥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49살이자 엄마여도 여전히 스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왕이자 영웅인 존재야말로 곧 ‘엄마’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녀를 존재하도록 하는 근원이자, 자녀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왕의 봉인이 풀렸다는 것은 즉, 엄마라는 이름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오히려 마왕의 부활로 인해 명옥과 민하는 서로를 이해한다. 민하는 ‘엄마’가 되기 전 명옥의 삶을 직접 경험하고, 명옥은 민하 또한 자신의 가치가 명확한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인지한다.
아직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엄마와 딸은 이세계에서 서로를 찾고 있다. 모녀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에 묻어 놓았던 각자의 삶의 조각을 추적한다. 엄마와 딸이 따로 또 함께한 이번 모험은 더 이상 영웅도 마왕도 중요하지 않다. ‘명옥’과 ‘민하’가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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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슈퍼 아줌마 '명옥'에게어딘가 낯익은 불청객이 찾아온다."뭐?! 마왕을 봉인해달라니, 난 올해로 49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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