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의 발화점』은 ‘학원물’이다.
1. 학원물
‘학원물’이라는 단어를 듣고는 이 작품을 낯선 장르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색해할 필요가 없다. 학교에 머무르는 청소년을 소재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서먹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에 청소년을 소환해 운영하는 방식은 시대마다 작가마다 달랐으나, 대상 자체가 ‘학교’에 있는 ‘청소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소재를 끌고 가는 방식에 있어서 변주와 변화가 빈번히 있었지만, 대상과 공간은 학교와 청소년 그 자체이니 그렇다. 그러니 30~40대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학원물’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어렵다면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2007)이나 최근에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예전 작품 〈언어의 정원〉(2013)과 같은 작품을 떠올려 보면 된다. 두 작품 모두 학교와 밀접하게 관련 있지 않은가. 이 리뷰에서 다루고자 하는 작품 『효정의 발화점』도 이런 커다란 계보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학원물’이라는 개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독자를 위해 가볍게 언급하는 바이다.
『효정의 발화점』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당차고 야무진 ‘우효정’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흥미로운 형식으로 담았다. 이 작품은 2018년 카카오 웹툰으로 연재를 시작한 이후, 대중들의 호평을 받으며 무사히 완결되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대형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힘겹게 작업했던 지난날을 종이책으로‘도’ 영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작가는 뿌듯하겠다.
무엇보다도 『효정의 발화점』은 ‘책’과 ‘웹’이라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재생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손에 잡히는 꽉 찬 두께로 읽게 될 경우, 단숨에 스토리를 꿰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웹툰의 경우 한 컷 한 컷 애정 있게 연출된 감정과 유머를 세밀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이처럼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이 다양한 만큼 『효정의 발화점』을 탐닉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든지 이 작가가 의도한 굵직한 ‘연출’을 느끼기에는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종이와 웹이라는 매질 차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감각 차이가 다를 수 있으나 어떤 방식이든지 ‘부산’에 도착한 독자는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매력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확률이 높다. 즉, 만화가 박선우에 대해 다시 한번 더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이 만화는 세밀하고 섬세하며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안고 있다. 이야기를 지나치게 찍어내는 만화를 보게 되면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가 쉽지 않은데, 웹툰의 형식으로도 꾸준히 〈효정의 발화점〉 같은 작품이 출현한다면 웹툰에 대한 편견도 점차 사라질 것 같다.
나는 첫 문장에서 이 작품을 ‘학원물’이라고 소개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학원물’이라는 뉘앙스로 인해 무엇인가 학교에서 벌어지는 입시 경쟁, 학업성적, 학교폭력, 부모님의 과의 갈등을 다룬 진부한 에피소드로 정도로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효정의 발화점』은 어벤저스다. 단순한 일상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로맨스, 코미디, 판타지, 미스터리, 추리와 같은 재미있는 요소를 잔뜩 품는다. 다양한 장르들이 응축되어 있어서 ‘과잉’의 형태로 흘러갈 수도 있었지만, 만화가 박선우는 ‘사랑’이라는 진득한 소재를 중심축으로 여러 요소를 더하고 포함했다.
2. 효정은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학창 시절 자신과 가장 친했던 친구의 모함으로 힘겨운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다.
“정말 미안해…괜히 화가 나서…너에 대해 안 좋은 얘기 하고 다닌 거…따돌림당하게 한 거…네가 사라지면 혼자가 될까봐, 그게 무서워서…효정아 나 미워하지마…”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가장 친했던 ‘나’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친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그녀 곁에 다가가 괜찮다며 위로해야 할까. 하지만 효정은 그 친구를 용서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네 기억 속 한편에 단단히 박힌 못이 되어 언제까지고 후회했으면 좋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경험으로 인해 효정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효정은 늘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효정에게 있어서 “상대의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것은 알게 된 만큼의 책임을 자초하는 것”이었고, 그 책임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굳이 책임을 떠안고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 후, 이런 마음이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밝은 얼굴로 먼저 다가와 준 친구들이 있었고, 과거 자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박하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효정은 감각적으로 박하안이 부당한 이유로 괴롭힘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돕는다. 이 과정에서 박하안이 무슨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고, 공통점이 많았던 이들은 점점 더 친숙해져 간다.
독자들은 무슨 이유로 우효정이 박하안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게 되고 그와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따라가다 보면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발화점’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된다. 박선우의 텍스트는 이 과정을 ‘판타지’, ‘추리’. ‘로맨스’의 형식을 통해 섬세하게 이끌어 간다.
모든 사람이 학창 시절을 겪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학교를 다니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보수적인 학교 시스템을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처럼 살기를 거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러니 그곳에서 발생하는 여러 감정들. 예를 들어 어긋나거나 온전하지 않은 질투, 오해와 시기심 그리고 누군가를 온전히 느끼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무엇보다도 이 텍스트는 ‘나’를 쳐다보게 해주는 거울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온전한 모습으로 기억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선우의 이 작품은 과거의 자신을 소환하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웹툰’ 〈효정의 발화점〉을 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성업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문학동네 편집팀에서 박선우의 웹툰 〈효정의 발화점〉을 보다 큰 판으로 웹툰과 닮은 연출을 시도해 볼 수는 없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웹툰과 종이책이 ‘다르다’라는 이유로 과거의 만화적 유산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웹툰의 연출을 ‘책’에 잘 녹여보는 방법은 어떨까. 그러면 〈효정의 발화점〉이 간직하고 있는 장점이 보다 증폭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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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불길에 휩싸일 정도로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한다는 건 대체 뭘까?"
고등학교 첫 학기를 시작한 효정은 예정된 이사와 전학만을 기다리며 새로운 학교생활에 설렘도 기대도 없다.
지루한 어느 날, 하굣길의 폐건물 안에서 불에 타고 있는 같은 반 소년 하안을 만나고 효정은 방화범이라는 소문을 가진 하안에게 다가가는데…
사랑 말고 모든 것을 함께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 마침내 단행본으로 만나는 우리의 소중한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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