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정의는 무엇일까. 심장이 멈추면 죽음으로 판정하지만, 뇌가 멈춘 경우는 아직 살아있다고 여긴다. 심장만 계속 뛰고 있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뇌가 다시 깨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코마 상태에서 우리의 의식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을까. 살아있지만 죽음과도 유사한 상태라는 양면적 상황은 이계 세계와 조우하는 특별한 존재로의 전환을 상상하게 한다. <경이로운 소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코마 상태에 빠진 이들이 융(저승)의 파수꾼과 계약을 통해 여러 능력을 각성하고 악령을 퇴치하는 카운터로 활동하는 이야기이다.
[ 그림 1, 장이 작가의 <경이로운 소문> (출처: 카카오 페이지) ]
판타지 속 리얼리즘
<경이로운 소문>의 캐릭터들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아직 과학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능력과 행동을 보여준다. 악령의 출현, 악령을 융의 세계로 소환하는 카운터라는 존재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느껴진다. 오히려 카운터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악당들의 면면은 무척이나 친숙하다. 부모의 권력을 믿고 학교 폭력을 일삼는 학생들, 사채와 장기밀매로 착취를 하는 조직폭력배, 비리 세력과 유착한 공직자들은 9시 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융의 세계를 탈출한 악령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울 숙주로 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선택한다. 수많은 악령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악당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카운터는 악령을 잡는 역할을 하지만 결국 그들이 쫓는 것은 나쁜 행동을 하는 악당들이다.
악당에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 역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약자들이다. 학교에서 소위 일진들에게 용돈 셔틀을 당하고, 사기로 전재산을 날리는 바람에 벗어날 수 없는 빚의 감옥에 갖혀버린 사람들, 돈과 권력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이 지금 이순간에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거짓과 위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와 권력을 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은 카운터와 악령이 등장하는 환상의 서사 속에서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악당 필벌
카운터들의 활동 규정에서는 악령이 기생한 인간을 함부로 죽이거나 과한 폭력을 가하는 것을 막는다. 악령을 처단하는 것은 융의 세계의 일이지만 숙주인 인간의 악행은 현실의 법에 따라 죄를 물어야 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카운터들은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 악인을 철저히 징벌하기도 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혹독하게 치르게 하려는 카운터의 행동에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실제 현실에서는 돈과 권력을 쥔 자들에 대해 법의 조사와 심판은 한없이 너그럽다. 큰 잘못을 했어도 많은 돈을 들여 전관 변호사를 고용하면 무죄로 풀려나거나 여러 이유로 감형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옥 안에서도 변호사 접견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수형인들과 달리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일반 사람들의 경우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 그들 세계에서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니 카운터들의 돌발행동은 현실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사이다 전개라는 댓글이 달릴 수 밖에 없다.
비현실적인, 그러나 현실적이었으면 좋겠을 ‘소문’
이 이야기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캐릭터는 주인공 ‘소문’이다. 카운터 중에도 특별한 ‘소문’은 온갖 문제의 해결사이다. 카운터가 되고나서 금세 이전 카운터들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나날이 새로운 능력을 발현해 낸다.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이다. 여기에 더해 너무나 착하다. 약자를 도와주는 일에 자신의 온몸을 내던진다. 현실에서는 소문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는 것이 경이로운 일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착하기만 한 것은 장점이 아니라 오히려 단점으로 치부되고 만다. 웹툰에서 ‘소문’의 성장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소문’의 착한 영향력이 현실에 널리 퍼져 ‘소문’과 같은 사람들이 비현실적이지 않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는 것이 경이롭지 않은 세상이 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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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불멸의 삶을 위해 지구로 내려온 사후세계 악한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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