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요정>, <멘트 빠칭코>, <지구 멸망의 날>은 각각 따로 발표된 독립출판 만화다. 일부 판매 행사와 독립출판 도서를 취급하는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었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독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작품들을 한데 엮은 단편집 <인생의 요정> 출간은 서점과 중고 장터를 뒤지고,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재고 문의를 하던 독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작가 ooo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만화도 일러스트도 도트로 이루어진 픽셀 아트라는 점이다. 본래 해상도가 낮은 디스플레이를 위해 고안된 스타일이라 선이 거칠다.
만화의 구성도 단순하다. 처음과 끝이 분명하고, 정보량이 적다. 대부분의, 아니,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 이름이 없을 정도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연급 인물도 없는 것 같다. 네 컷 만화를 연속으로 계속 읽다 보면 이 등장인물이 전에 다른 에피소드에 나왔던 그가 맞는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고, 그럴 필요도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의 생김새는 아르바이트하느라고 인형 탈을 뒤집어쓴 성인 같다. 컬러 원고에 등장하는 경우, 그들은 온몸이 사탕이나 젤리, 풍선껌을 연상시키는 색으로 채워져 있다. 생략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빼버리고 축소한 덕분에 작가의 만화에서는 상황과 감정이 유독 돋보인다.
만화 한 편은 주로 네 컷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묘한 방식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한 일상의 삽화가 주요 레퍼토리다. 소소하고 흔하지만 그렇다고 없어지지는 않는 응어리나 불만이 등장하기도 한다. 여태껏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심해야 할 생태, 환경, 기후 위기 같은 문제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농담에 뼈가 있어서 읽다가 마음에 걸릴 때도 있다.
초반에 제시되는 문제나 갈등, 부조리한 상황은 악화하기 일쑤고 제대로 해소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뒤따르는 마지막 컷에는 당황, 분노, 후회하고 의문을 던지거나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상태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인물이 나온다. (쓰다 보니 거창해지고 말았지만, 가벼운 농담도 많다) 네모난 점을 찍어서 그린 표정인데도 섬세하고 정확하다. 누가 도트로 그릴 거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디테일 덕분에 어떤 독자는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요정>을 필두로 한 일련의 요정 시리즈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결을 조금 달리한다. 요정마다 인생의 요정, 낚시의 요정, 업무의 요정 같은 호칭이 있고 외모로 구분할 수 있는 특징도 있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로서 사람들의 일상에 개입하거나, 직접 경험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방관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인간은 요정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예상은 빗나간다. 인생의 요정은 고통을 주고, 낚시의 요정은 인간을 낚는다. 말이 요정이지, 하는 짓은 원한이 있어서 인간을 괴롭히는 구전 설화의 도깨비나 귀신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악하다고 규정하기도 어렵다. 낚시의 요정이 인간을 괴롭히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죽음의 요정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돕는다.
<멘트 빠칭코>는 '칭찬 멘트'가 보상으로 지급되는 파친코 게임장을 배경으로 한 짧은 이야기이다. 주인공으로 멘트 수집가가 나오고, 그의 절망이 묘사되어 있다.
<지구 멸망의 날>은 앞에 언급한 두 작품보다 더 어둡고 자조적이다. 맨 마지막에서 제목 그대로 지구가 멸망하는데, 일이 터지기 전에 탈출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모양인지 누가 리액션을 하는 장면도 없어서 더 그렇다.
해상도를 일부러 깨뜨린 것 같은 도트 그래픽에 한 번 눈길이 가고, 네 컷 안에서 깔끔하게 완성되는 농담에 호감이 가고, 마냥 가벼운 것 같다가도 어떤 문제를 턱 제시하는 변칙적인 콤비네이션이 인상에 남는다. 패널 네 컷을 읽는 데에는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를 몇 초 더 볼지 말지 결정하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리뷰보다는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만화를 직접 읽는 편이 낫다고 맨 처음에 적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문장의 위치를 바꿨다는 점을 언급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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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스러운 정령들이 인간계를 떠돌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인생의 요정.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인생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쓰레기만 버려달라는 인간의 말에 인간을 분리수거하고, 방 안에 누워 인간의 과자를 빼앗아 먹으며 잔소리만 해대는 것이 그의 일과.
인간의 평균 80년짜리 인생이 어떻게 순조롭게 망해가는지 지켜보면서, 때로는 채찍질을 하고 때로는 채찍질을 당하며 있으나 마나 한 삶의 지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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