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객체’로 구분되는 인간이란 존재는 사실 ‘주체’로써 여러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다. 위치나, 지위, 역할, 페르소나 등으로 구분될 수 있는 셈이다. 가령, 한 명의 남성이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그저 한 명의 남성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의 남편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또, 누군가의 아들이 되기도 하며 직업으로 구분된다면 한 직업을 가진 이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구분되는 게 하나로 모여 그 사람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 안에서 이러한 복합적인 부분을 잘 드러내면, 우리는 이를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느낀다.
똑같은 세계관과 설정을 지녔더라도 이러한 캐릭터성을 잘만 활용하면 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 <아비무쌍>이 바로 그렇다. 물론, <아비무쌍>의 세계관과 설정이 새롭지 않다는 게 아니다. 세계관적으로도 나름의 차별성을 주고자 하는 흔적이 보인다. 그래도 ‘무협’이라는 기본적인 틀 안에서 가장 큰 차별성으로 인식되는 건 캐릭터성의 활용임이 틀림없다.
[ 카카오웹툰, 카카오페이지 이현석, 노경찬 작가의 <아비무쌍> ]
보통의 무협 장르에서 주인공이 내세우는 가장 큰 캐릭터성은 ‘무인’인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이란 요소를 추가해도 이는 같다. 결국 ‘00한 무인’으로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아비무쌍>의 경우, 주인공 ‘노가장’은 ‘무인’이 아닌 ‘아버지’로의 정체성이 좀 더 강하게 강조된다. 그의 강해지는 궁극적 목적은 복수를 위해서도, 무인으로의 꿈을 위해서도 아니다. 다름이 아닌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주인공의 캐릭터성이 차별성을 만든다.
이것은 더 나아가 우선순위의 배열로 만들어낸 효과이다. 노가장이 무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분명 자신의 무공에 대해 흥미를 갖고, 궁금한 점을 찾고 훈련에 임한다. 그러한 점도 이 작품의 재미 요소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든든하게 기반을 받쳐주는 것은 ‘아버지’라는 정체성이다. 그 외에도 그를 구성하는 요소는 더 있다. 사별했으나, 여전히 죽은 아내에 있어서는 남편이라는 감정선도 존재하고, 이는 아버지라는 정체성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새롭게 노가장과 로맨스를 형성하는 캐릭터의 등장은 주인공에게 ‘남성’으로의 구성 요소를 형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요소를 단순하게 설정만 하는 건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아비무쌍>의 경우가 이를 잘 활용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린다. 가령, 임무로 인해 멀리 전투를 떠난 노가장은 길어지는 전투에 자식들을 떠올린다. 어서 빨리 이 전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이는 무인으로, 또 조직에 속한 일원으로 임무를 수행하나,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또, 노가장이 새로운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를 좋아하는 여인이 나타나자, 노가장은 고민을 한다. 자신이 애 셋이 딸린 아비임을 떠올리고, 동시에 죽은 아내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되어서야 자신이 그 여인을 좋아하는지 ‘이성’으로의 고민이 뒤따른다. 이를 통해 노가장을 이루는 구성 요소의 우선순위들을 엿볼 수 있고, 한 캐릭터의 입체성을 어떻게 이루고, 보여줘야 하는지 알 수가 있다.
<아비무쌍>은 간단하게 말하면 아버지가 위험한 무협 세계관 속에서 자식들과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아빠가 강한 이야기 아니야?’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좀 더 깊이 보면 생각보다 그 간단한 부분을 매끄럽게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아버지’라는 요소 하나를 내세운 게 아닌 여러 요소 중 그 요소를 가장 맨 위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이 <아비무쌍>이 가진 매력을 가장 극대화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