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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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을 녹이는 아주 차가운 사랑

‘나’를 잃게 되면 좀비가 되는 세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이야기', <좀비 마더>

2023-10-23 주다빈

아주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 있다. 나는 내 아이를 낳아서 절대 한 명의 사회인으로 키워내지 못할 것이란 점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뭔가를 키우는 것에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학교 창가에서 빨간 포트에 담겨 쑥쑥 자라던 토마토는 어느새 바짝 말라 죽어 버렸고, 꽃망울까지 맺혔던 선인장은 어느샌가 비실거려지더니 썩어버렸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애정과 관심을 주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육아와 양육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에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나와 언니를 꽤 성공적으로(?) 키워낸 엄마도 다르게 보였다.

그랬던 나도 일정한 수입을 위해 동네 학원에 나가 3시간씩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져서 공부를 못 시키겠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아주 짧게 살아봤지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굳이 공부가 적성이지도 않은 아이가 공부에 매달려서 자기 적성을 찾을 시간을 허비하는 게 너무 큰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간혹 원장 선생님께 아이들 공부를 너무 시키지 않는 게 아니냐는 꾸지람을 듣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매번 약한 마음이 드니까 내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남의 아이도 이렇게 아깝고 애잔한데 내 배 아파 낳은 아이는 또 얼마나 소중할까?


| 모든 걸 이기는 건 결국 사랑, 사랑

<좀비 마더>는 이런 상황을 미리 겪어본 박소림 작가의 자전적인 만화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해진 엄마’는 반복되는 독박 육아에 지쳐갈 무렵 좀비가 돼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직 너무 어린아이를 혼자 두고 가버릴 수 없어 좀비가 된 자신을 주변인에게 숨기며 계속해서 아이를 돌본다. 그러다 자기 남편마저 그녀가 알아채기 오래전부터 좀비 생활을 해왔음을 알게 된다. 그 무렵 해진 엄마의 아파트에서는 해진 엄마처럼 좀비가 되는 여자들부터 젖소로 변한 여자, 실종되거나 자살하는 여성들이 생겨난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해진 엄마는 아이 이유식을 만들 장을 보고 아이를 씻기고 퇴근하는 남편을 맞으며 일상을 지탱하고자 애를 쓴다.



한편 좀비의 존재가 대대적으로 방송됐고 국가는 좀비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좀비 수는 꾸준히 증가한다. 해진 엄마를 포함한 좀비들은 사회로부터 강제 격리되어 지내게 되었으나 갑작스러운 해진이의 고열로 해진 엄마와 아빠는 격리 규칙을 어기고 응급실로 달려간다. 우여곡절 끝에 치료받은 해진이와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해진이 가족은 차가운 시선과 혐오를 맞닥뜨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해진 엄마는 그들에 맞서게 되고 다른 좀비들 역시 해진이네 가족을 지지하며 관처럼 느껴지던 집을 벗어나 밖으로 나온다. 이후 뉴스에서 좀비 바이러스에는 전염병이 없음이 밝혀지며 해진이네의 삶은 조금은 삐그덕거리지만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 만화는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해진 엄마는 자기 남편이 좀비가 됐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부부관계를 되짚어 본다. 모든 부부가 그렇듯이 남은 평생을 함께 행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을 테다. 그러나 서로를 마주 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남편이 좀비가 됐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해왔다.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된 뒤, 육아에 참여하게 된 남편은 더 아내를 이해하게 됐고 두 부부는 서로를 지탱하며 가정을 지켜나간다. 이러한 가족애 외에도 인간애 또한 느껴진다. 좀비가 돼 버린 사람들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한층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간다. 준범 할머니로 부터 듣게 된 이야기로 해진 엄마는 인간적으로 안쓰러움과 측은지심을 느끼게 되고 이해와 관심의 표현으로 요구르트를 건넨다. 또 자신을 향해 야구방망이를 흔들었던 서윤 엄마가 남편의 강압 행위를 피해 도망쳐 왔을 때도 문을 열어 그녀를 숨겨준다. 차갑게 식어버린 자기 몸보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더욱 견디기 힘든 혹한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작가의 인간애가 느껴진 장면은 역시 마지막 에피소드이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이들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해진이네에 무차별적인 혐오 발언과 행동을 한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해진 엄마는 그들을 향해 위협적인 모습을 취한다.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좀비 이웃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 해진이네 가족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 자신들을 돌팔매질하던 이웃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어떠한 액션 장면도 없었고 결투 장면도 없었지만, 그 어느 장면보다도 처절하게 느껴진다. 그 사건과 정부의 발표로 좀비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좀비는 존재하고 또 누군가는 좀비가 되고 있다. 좀비가 돼버린 탓에 타인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지면서 생활 반경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좀비 마더>는 ‘나’를 잃게 되면 좀비가 되는 세계이다. 좀비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개인적으론 명찰처럼 달라붙는 역할에서 굳건히 나를 지키는 마음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나왔던 것처럼 서로가 연대하여 지지해 준다면 사회에 만연한 혐오도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 아주 차가운 사랑을 이야기하는 <좀비 마더>를 권한다.


필진이미지

주다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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