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학습만화라는 카테고리는 아동층을 상대로, 본인보다는 부모에 의해 권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에서 ‘만화’라는 매체가 검열과 규제에 휩싸였을 때, 그러한 ‘불건전’의 논란을 피해 가는 게 바로 ‘학습’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딱딱한 교과서를 대신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타입의 만화를 선호했다. 알약보다는 가루약, 가루약보다는 시럽이 더 먹기 편하듯 ‘만화’는 학습의 딱딱함을 보완해줬다. 이후 시간이 지나 2022년 한국에서는 학습만화 플랫폼 ‘이만배’가 출범했다. 젊은 층을 상대로 한 이 플랫폼은 ‘학습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를 타겟 삼았고, 기왕 만화를 볼 것이라면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유익함을 품자는 인식에 합류했다.
그 중에는 압듈라 작가의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도 있다. <또!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로 완결된 이 작품은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두 가지 방식을 택했다. 하나는 모에화다. ‘만화’ 카테고리에 익숙한 젊은 독자층이 서브컬처 향유층과 겹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만화에 대한 친숙도를 높인다. <또!까해만>의 부록이 말하듯, 인체의 각 계통을 ‘여왕’이라는 존재에 빗대어 그리는 일과 이를 하나의 캐릭터 컨셉으로 풀어내는 일은 만화 작법에서의 ‘캐릭터성’을 해부학에서의 ‘계통’에 빗대려는 시도로 보여진다. 즉, 작가는 성격=계열/캐릭터=인체에 빗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업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모에화는 단순히 서브컬처의 코드적 양식으로만 풀이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코드성은 지맥에서 물을 찾아내듯, 대상을 구성하는 연결요인들을 탐지하여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모에’라는 말이 여러 성질들의 부분집합을 지시한다는 걸 떠올려보자. 해부학에서 모에화를 사용하는 일은 우리가 평소 살아가는 곳이어서 인식하지 못했던 ‘몸’에 관한 인식을 재고하게 한다. 해부학은 우리의 몸이 각종 계통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신경계와 근육의 관계는 <부록>에서도 그려지듯 서로가 서로에 의해 보조받는다. 또한 심장은 신경과 근육을 독립적으로 사용하지만, 소화계가 에너지를 공급해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즉, 모에화는 독자층을 상정한 화술이면서 ‘인체’를 단순한 유기체로만 바라보지 않게 해준다. 모에론의 기조를 따르자면, 인체란 어떠한 성질들의 부분집합이면서, 이들 각자를 들여다보며 애호하는 게 바로 이 책의 화술인 셈이다. 작가가 캐릭터의 콘티와 설정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실제 세포와 기관의 구조를 모에화한 캐릭터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모에’가 여러 매력들을 모아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바꾸어 말하자면, 해부학은 우리가 대상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또는 매력이 작동하는 과정과 원리를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다. ‘해부학’은 대상을 해체해서 형태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학문이다.
이를 토대로 이 만화에 제기되는 비판을 옹호해보고 싶다. 작가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두 번째 방식은 인터넷 밈이다. 인터넷 밈이 곳곳에 사용되었다는 점이 학습만화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는 정보를 학습하는 일에 인터넷 밈이 끼어들어 독서에 방해된다는 의견이다. 또한 인터넷 밈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 보았을 때 다소 촌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인터넷 밈은 오래된 정보에 ‘최신’이라는 윤활 작업을 해주지만, 그만큼 진득하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확실히 합리적인 면이 있지만 학습 만화에서 인터넷 밈의 역할은 인체에 연골이 존재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빠르게 생산되어 미끄러지는 밈의 속성은 학습의 단단함 사이에 끼어 전반적인 작동을 원활히 해준다.
학습만화의 수요층이 성인층으로 확대된 현 상황에서 학습만화의 서브컬처화는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여기에 ‘오래도록 읽힐 수 있는’ 도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학습만화의 본질은 ‘배움’에 있고, 이러한 배움의 과정은 교과서적으로 무언가를 암기하여 서술하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학습만화의 가치는 배움의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 즉 ‘경로’와 ‘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재고함에 있다. 가령 우리는 사람들이 착해 보이려는 마음으로 착한 행동을 했을 때 그게 정말 선이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어쨌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은 착한 일이다. 학습만화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밈이 작품의 진지함과 수명을 해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독자들은 학습만화보다 더 오래 살 것이기에, 독자의 마음에 기억됨으로써 더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