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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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현실을 '바깥'으로 두며 감상하는 작품, 지발 작가의 <무직백수 계백순>

이 작품을 본다는 건 “자신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식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니라 간극에서 바깥을 소유하는 한 가지 방법

2023-12-21 수차미

‘무직’과 ‘백수’라는 동의어를 두 번이나 반복하는 이 만화는 직장을 다니다 관두고 작가 지망생이 된, 무엇보다 ‘백수’에 가까운 계백순의 일상을 그린다. 기본적으로 미소녀 캐릭터를 내세우지만 모에를 주로 하는 미소녀계열 작품은 아니며, 아마추어 연재에서 주로 기용되는 ‘TS화’에 가까워 보인다. 이 ‘TS’화란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어느 정도 무게감을 덜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현실의 나와는 다른 성별이므로 작품 속의 이야기는 나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사용된다. 즉 TS화란 브레히트식의 방법론처럼 작품에 거리를 두며 자신을 ‘바깥’에 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작품에는 ‘바깥’이란 게 있다. 이 바깥은 작품을 보는 우리가 자리하는 곳으로, 소위 ‘나’가 구성되어 투영되는 공간이다. 이를 구분 짓기에 우리는 작품이 전달하는 몇몇 상황이나 설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가령 로맨스 장르를 예로 들어보자. <짝>이나 <나는 솔로> 같은 방송은 우리가 연애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리낌 없이 볼 수 있다. 비록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자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우발적이거나 자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며 이때 우리는 그런 돌출의 지점들을 멀리서 관망한다. 속되게 표현하면, “팝콘을 뜯는다”. 



어떤 이유로 연애를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연애에 참견하게 하는 연애 프로그램들은 우리에게 ‘안전한 자리’를 제공한다. 만화도 그렇다. 만화와 같은 창작물에서는 ‘상황’과 ‘감정’의 분리가 주된 동력으로 사용된다. 만화를 보는 독자는 작품에 벌어지는 내용을 따라갈 뿐이므로 어떠한 전개나 상황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독자는 그냥 벌어지는 일들을 따라갈 뿐이므로 사건에 대한 통제의식보다는 자신이 보고 느끼는 일들에 관해서만 충실해진다. 즉 만화론에서 말하는 ‘모에’ 요소가 도출되어, ‘나’의 감정에만 충실해지게 된다. 바로 이 안전한 자리가 작품들이 사용하는 ‘바깥’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무직으로 생활하는 계백순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청년실업 시대에 가장 보기 싫은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만화는 독자들에게 바깥을 제공한다. 독자들이 만화를 보며 자신의 경험에 대해 고백하는 일은, 실제 현실을 회고하며 인물의 처지에 이입하기보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계백순>에 대한 독자들의 논평은 작품이 제공하는 만큼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청년실업처럼 큰 문제보다는 <계백순>의 생활반경에 철저히 맞춰진다. <계백순>이 다루는 이야기는 이런 안전함을 담보로 한다. 문제의 현실은 우리가 보는 것 이상으로 펼쳐지진 않을 것이다. 

자신이 현재 백수라 하더라도, 독자들은 이런 부류의 만화를 보며 ‘진짜’ 현실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작품이 다루는 것들이 현실에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계백순>은 현실과 비슷한 사건이나 요인들을 가져오지만 만화의 문법을 가져오면서 이들 현실이 ‘그곳’에만 남아있게 한다. 그러니까 이런 부류의 만화는 ‘계백순’ 같은 미소녀 캐릭터에 자신을 이입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현실을 불편하지 않게 버려둘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제공한다. 특수한 형태의 안정화 장치라고나 할까. 빗대자면 <계백순>은 잘생긴 배우를 섭외해 만든 <미생>과 그 맥락이 비슷하다.

<미생>은 잘생긴 배우에게 시선이 쏠린 사이, 이를 중심으로 현실의 어떤 문제들이 휘말리는 형태의 드라마다. <미생>은 주변에서 쉽게 보기 힘든 타입의 미소년 배우를 기용하면서, 주변에서 보기 쉬운 직장 이야기를 다루는 일에서 동력을 얻었었다. <미생>에서 묘사되는 직장 내 상황들은 주인공 장그래를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한 모에 요소처럼 여겨졌고, 축약하면 ‘말도 안 되는 것’에 ‘두말할 것 없는 것’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가 보여주는 간극에서 환희가 부상한다. 이른바 “불편한 현실”은 드라마 속에 남고, 관객은 ‘문제의 현실’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신속히 복귀한다. 

<미생>은 불편한 상황들에 관한 감정들을 드라마 안에 남겨두는 효과가 있었다. 드라마는 무엇이든 제공하지만 현실은 두말하기를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러한 불일치의 환담은 자신을 사회에서 버려지거나 어긋난 것으로 여기는 청년들에게 ‘어긋남’을 실패로 이해하지 않게, 시대착오적이거나 추락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게 해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현실에 남기보다 드라마 안에서만 남기를 택하며, 마찬가지로 <계백순>은 실패의 감정을 대신한다. <계백순>을 본다는 건 “자신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식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니라 간극에서 바깥을 소유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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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미

< 만화평론가> 
* 2019 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상 신인 부분 
* 2019 한국예총 평론상 영화 부문
* 2020 서울시립대 영화평론 공모전 대학원생 부문
* 2024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 저서 『안녕하세요 오즈 야스지로』,『포스트 시대의 영화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