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부커상 후보작에 오른 닉 드르나소의 『사브리나』의 초반 장면에서, 캘빈과 테디는 함께 뉴스를 본다. 9.11 테러의 16주기를 맞아 언론사에서 국립 9.11 추모 박물관을 찾은 뉴스다. 캘빈은 이 뉴스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박물관에 있는 추모의 길을 산책하는 것이 좋다는 반응을 보인다. 덧붙여 그는 그해 여름 살인사건에 대한 특집 방송을 보다가 여자친구와 키스를 했다며, 그 후 그 살인사건을 접하게 되면 첫 키스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것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것이 이상한지를 토로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에서 “실재가 더 이상 과거의 실재가 아닐 때, 향수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라고 저술했다(1). 이는 추후 다시 언급되는 “히스테리적이고 역사적인 회고”와도 상통한다. 이에 대해 역자는 “지시물, 진실, 역사, 경험된 것, 사실성 등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이것들에 관한 수많은 인위적 부활과 시뮬라크르가 행해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라고 주석을 달았다(2). 뉴스·방송과 같은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이미지와 기호도 시뮬라크르에 해당하는데, 그것들은 이미지로는 존재하지만 실재가 없고, 파생실재(Hyper-réel) 상태에서 함열(implosion)(3)을 통해 대상 간에 다름의 구분이 없는 ‘비구분’ 상태를 유도한다. 한 대상과 다른 대상의 구분이 없어져 피아의 구별마저 없어진다면 남는 것은 동일시일 것이다. 실재의 폐허에 남는 것은 이미지에 대한 개인적 경험뿐이다. 그래서 시뮬라크르인 ‘박물관’과, 그 박물관을 다룬 ‘뉴스’와, 살인사건을 다룬 ‘방송’을 보고난 캘빈의 감상이 생뚱맞았던 것이리라. 이후 테디의 여자친구 ‘사브리나’가 살해된 비디오가 방송국에 배달됨으로써 시작되는 사건들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살인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산드라, 테디, 캘빈의 고통에 관심도 없으며 호의적이지 않았음은 이 장면을 더욱 아프게 돌아보게 만든다.
이처럼 『사브리나』와 전작 『베벌리』, 최근작 『연기 수업』까지 닉 드르나소의 작품에는 체제와 공동체에 만연한 시뮬라크르가 소재로 차용된다. 『베벌리』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이 기호와 이미지만 범람하는 광고들과 거짓 진술로 만들어진 소문과 뉴스가 등장하고, 이는 『사브리나』의 살인사건 비디오가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음모론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베벌리』의 실체 없는 가짜 뉴스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확산되고, 거짓 진술로 만들어진 몽타주는 특정 인종에 대한 사람들의 숨겨왔던 혐오와 편견을 ‘합리적으로’ 발산할 기회를 마련한다. 『사브리나』에서는 살인사건의 영상과 주변인의 개인정보가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피해자의 가족 및 관계자에게 2차 가해가 발생한다. 사브리나는 영상물이 복제되고 공유될 때마다 인위적으로 되살아나고 다시 살해당하는 것이다. ‘사브리나의 죽음’, 그리고 주변인 또한 살인사건의 피해자라는 실재는 수많은 복제물과 그를 토대로 온라인에서 생산된 음모론이라는 파생 실재 속에서 사라지고, 미디어에서 제공되는 살인사건의 이미지에 지배받는 대중들은 죽음이라는 실재의 사건에 대해 애도가 아닌,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인 반응만 할 뿐이다.
2023년 발간된 『연기 수업』은 앞선 두 작품에서 구축한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의 고립된 개인이 어떻게 스스로 시뮬라크르를 구축하고, 그것에 잠식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에서 개인으로 미시화되었을 뿐, 가장(假裝)의 작동 기제는 동일하다. 강사 존 스미스는 ‘연기 수업’에 참여한 10명의 중심인물들을 이끈다. 수강생들은 저마다 삶에서의 문제점을 안고 있어, 변화를 바라며 연기 수업에 참가한다. 그들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사회에서, 관계에서, 직장에서 표류하고 있으며 일련의 시스템 속에서 ‘부적응’한 인물이다. 이를테면 로지와 데니스는 그들의 결혼생활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식당 서버인 데니스는 (추후 그의 환상 속에서 드러난 바로는) 경제적인 성공과 인정을 열망한다, 수강생 10명 중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이는 거의 없으며, 다수는 비정규직이거나, 직장이 없거나, 쉽게 해고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수강생 중 일부는 연기 수업이 진행되면서 ‘부적응’이 심화되어 직장을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한다. 표류하는 삶의 구심점을 찾기 위해 연기 수업에 참여하였으나,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고용안정성이 흔들린다는 것은 도리어 생계의 주춧돌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강사 존은 이들의 부적응 상태를 이용해 가장된 환상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 각 인물들은 환상인지 실제 극(劇) 중 연기인지 알 수 없는 장(場) 속에서 내면의 두려움과 욕망을 확인하고 해소하고자 하지만, 환상은 도피처의 기능만 할 뿐이다. 결국 수강생들은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가장(假裝)을 선호하게 되고, 결국 만들어낸 시뮬라크르가 현실의 삶을 지배한다.
『연기 수업』 말미에 존이 많은 수강생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려 하자, 그와 함께 떠나려는 남편 데니스에게 아내 로지는 호소한다. “이거 다 텅 빈 거야. 보면 아무것도 없다고.” 로지는 이 위험한 가장(假將)을 간파하고 그를 설득하지만, 데니스의 결정에는 흔들림이 없다. 연기 수업의 ‘가짜 자신’에서 오는 만족감이 그의 삶을 압도했다.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시대에, 파생실재로의 도피 내지 회피는 실재에 대한 실체적인 경험을 제거한다. 시뮬라크르의 전파는 실재에 대한 슬픔, 실재에 대한 절망을 제거하고 피상적인 것으로 남겨놓음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대면접촉하고 체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세 작품 내에서 이에 대한 회복 방안이 적극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브리나』의 결말에서 산드라는 계획했던 자전거 여행을 실천에 옮기고, 테디는 캘빈의 고양이가 사라진 것을 계기로 동물보호소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이러한 결말은 그럼에도 땅에 발붙이고 사는 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희망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테디가 의사소통을 비가시적으로 만드는 핸드폰을 작품의 결말까지 구입하지 않는 점은 상징적이다. 그러나 닉 드르나소의 작품들은 ‘주어진 것이니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식의, 대책 없이 낙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베벌리』의 테일러는 제2의 티미 얀시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사브리나의 살인범), 1시간째 괴한에게 쫓기던 여성은 테일러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도리어 그에게 집 주소를 노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연기 수업』의 로지는 가장(假裝)이 보여주는 환상에 종속되지는 않았지만 홀로 남겨진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실재의 회복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요원한 도달점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테다. 닉 드르나소의 작품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1)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하태환 옮김, 민음사 2001, p. 28
(2) 장 보드리야르, 앞의 책 p. 33
(3) 장 보드리야르, 앞의 책 p. 42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