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주인공이 목이 잘리면서부터 시작된다. 이윽고 부활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주인공이 쉽게 죽지 않는 몸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죽은 이유도 대수롭지 않다. 더 쫓아오지 않게 죽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함이다. 이러한 첫 장면처럼 웹툰 <부패의 사제>는 어딘가 모르게 광기가 여려 있다. 소위 말해 대놓고 돈 게 아니라 은은하게 돌아있는 작품이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부패의 사제>는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지게 된 주인공이 하필 가장 비주류이자, 세계관 속에서 공적으로 취급받는 ‘부패의 사제’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마르낙은 그가 모시는 신 ‘부패의 어머니’의 손 일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목표는 전 세계의 흩어져 있는 13개의 성물을 찾는 것. 본래 게임이었듯이 이야기도 마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구조 자체는 단순하지만, ‘부패의 사제’란 직업과 ‘부패의 어머니’란 캐릭터성이 이런 단순한 구조를 흥미롭게 만든다.
| ‘살해’를 외치는 어머니
주인공 마르낙은 품에 숨어 있는 손이자 ‘부패의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른다. 그러면 손은 ‘살해’라는 단어로만 대답한다. 신기하게도 마르낙은 그런 그녀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 이러한 모습은 기묘하다.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관계와 구조. 심지어 그녀는 질투도 한다. 마르낙이 젊은 여자와 말만 조금 섞어도 ‘살해’를 외치며, 튀어나온다. 그러면 마르낙이 달래며 여행을 이어나간다. 사실상 어머니란 호칭으로 부를 뿐 일종의 히로인 포지션이기도 한 셈이다. 주인공은 게임 세상에 빠짐으로써 스스로 뇌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도 표현한다. 그래서 잔인한 광경을 보더라도 그렇게 놀라지 않으며, 첫 장면에서 스스로 목을 내어줄 만큼 다치는 거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마르낙이 신경 쓰는 건 그가 모시는 어머니뿐. 대체로 모든 일에 크게 당황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상황을 관망한다. 하지만 벌어지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게 이 작품만의 묘한 텐션을 만들어준다.
| ‘게임’ 시스템이지만 현실 판타지 같은
기본적으로 13개의 성물을 찾는 것이 주인공의 목적이다. 그리고 ‘성물’을 찿아서 바치거나, ‘신성’, 보편적으로 다른 세계관에서는 ‘마력’이라고 불리우는 걸 일정량 이상 바치면 마르낙은 어머니에게서 특별한 능력 하나씩을 부여받는다. 전형적으로 게임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시스템이 접목되어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부분을 잊지 않고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게 묘하게 담담하면서 광기 있는 마르낙의 성격과 맞물리면서 서사 자체는 게임보다는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건 마르낙이 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도 그렇다. 특별히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야겠다는 심리보다는 소소하게 미각을 되찾고 싶다는 목적이 크다. 대부분 주인공에게 명확한 목표가 없으면 그 작품의 동력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부패의 사제>의 경우, 그렇게 열정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 캐릭터가 어떻게 이 세계를 살아가고 헤쳐나갈지 보는 재미와 묘하게 맞는 어머니와의 케미가 자칫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동력을 대체하여 충분한 재미를 주고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색적인 판타지 작품이 보고 싶다면 <부패의 사제>가 그 주제에 딱 알맞지 않을까.